돌샘 이야기/살며 생각하며

아버지께서는 왜 방에 들어가셨을까?

돌샘 2014. 10. 25. 14:17

아버지께서는 왜 방에 들어가셨을까?

이메일로 어떤 분이 전송해 준 글 중에 ‘아버지께서는 왜 방에 들어가셨을까?’라는 짧은 글이 있었다.

한번 훑어보고는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글이라 여기고 지워버렸다.

나의 선친께서는 생전에 집안행사나 명절 때 우리 육남매와 딸린 가족 전체 또는 일부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오후에는 기원에 나가서 지인들과 바둑을 두셨고

밤에는 약주를 한잔 드시면서 우리들과 몇 말씀 나누시고는 일찍 방으로 들어가서 주무시곤 하셨다.

그저 자식들이 자세를 편하게 하여 쉬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다시 왔기에 차분히 읽어보았더니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고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는 것 같다.

유사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니 참고하기 위하여 그 글을 여기에 올려놓는다.

 

<아버지께서는 왜 방에 들어가셨을까?>

'ㅈ' 신문사 오 기자 네는 다섯 남매다.

모두 출가했지만 우애가 좋아 식구들이 종종 모이곤 한다.

그날도 식구들이 모여 이것저것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그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모처럼 형제들이 모이면 아이들 교육 이야기부터 시작해

각자의 직장 이야기에, 집 장만과 재테크 이야기, 정치 이야기,

연예인 가십거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야기꽃이 만발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방금 전까지 계시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조용히 혼자서 방에 들어가 버리신 것이다.

 

"우리끼리만 너무 시끄러웠나?"

큰아들이 먼저 아버지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맥주나 한잔 하시자고 청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마다하셨다.

이런 적이 없으셨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마음이 상하신 게 분명하다 싶으니

형제들 간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아버지 방에서 나온 큰아들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바둑 두자고 하셨는데 안 둬서 화가 나셨나?"

작은 아들도 거들고 나왔다.

"아까 집값 얘기를 나눌 때 자꾸 엉뚱한 말씀만 하셔서

모르시면 가만 계시라고 했는데, 그 때부터 조용하셨거든,

그것 때문에 화나셨을 거야."

그러자 큰딸도 한마디 했다.

"아니야, 아버지 방에 새로 산 점퍼가 걸려 있길래,

애들이나 입는 걸 사셨다고 뭐라 그랬거든,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기분 상하신 것 같아요,"

며느리도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때문인가 봐요.

애한테 사탕을 주시길래 제가 깜짝 놀라서 말렸거든요.

요즘 치과에 다니고 있어서 그랬는데, 너무 정색하고 말씀드렸나.....,"

작은 딸도 거든다.

"실은..... 조금 전에 아버지가 하도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셔서

그냥 부엌으로 가버렸거든요. 그래서 속상하셨나봐."

 

형제들의 근심 어린 자책이 이어졌지만

어떤 이유로 아버지가 토라지셨는지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저 다섯 남매가 한꺼번에 아버지 방에 우르르 몰려가

사과와 애교를 섞어 기분을 풀어드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웃음만 보이셨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날 왜 방에 슬그머니 들어가셨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오 기자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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