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살며 생각하며

봉선화

돌샘 2014. 6. 25. 21:26

봉선화

(2014.6)

봄에 고추랑 방울도마도와 가지 모종을 사다가 아파트 옥상에 심었다.

화분에 심은 고추모종은 유독 비실거리며 잘 자라지 않는데 어디서 묻어왔는지

언저리에 봉선화 싹이 터더니 여름이 되자 두 포기에 빨간 꽃이 피어났다.

어린 시절 담장 밑이나 정원주변에 붉은 봉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면

여동생과 동네 여자아이들은 꽃잎을 따다가 손톱에 곱게 물을 들이고는 손가락을 내밀며 자랑스러워했다.

은은한 고운 빛깔에 마음이 끌리어 나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남자들은 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에 단념을 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0년쯤 흐른 어느 해 여름 지방에 출장을 갔는데

현장사무실 앞 꽃밭 한 모퉁이에 봉선화가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딸아이 생각이 나서 싱싱한 꽃잎을 골라 따고 마르지 않도록 비닐로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여

집으로 가져와 보여주었더니 좋아하며 손톱에 물을 들이겠다고 하여 모처럼 자상한 아빠노릇을 한 적이 있다.

다시 20여년이 지난 여름날 아침 화분에 심지 않았는데도 피어난 봉선화의 예쁜 꽃잎을 바라보며

손톱이 아닌 내 마음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지난 옛일들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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