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여행과 답사(2023년)

원주 폐사지(흥법사, 법천사, 거돈사) 답사

돌샘 2023. 11. 3. 21:49

원주 폐사지(흥법사, 법천사, 거돈사) 답사

(2023.10.28.)

‘소금산그랜드밸리’ 경치를 구경하느라 폐사지 답사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흥법사지(興法寺址)를 찾아들었을 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인기척 없는 밭 가운데 진공대사탑비(보물)와 삼층석탑(보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밭 한쪽엔 경작 중 폐사지에서 나온 듯한 낡은 기와조각이 쌓여 있었다. 탑비의 비신은 넘어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며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귀부는 등을 비롯해 거북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인 것이 독특해 보였다. 이수에 새겨진 용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돼 있었다. 삼층석탑은 탑의 구성이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탑의 1층 몸돌 한 면에 문과 문고리 장식이 새겨져 있었으나, 전체적인 비례가 맞지 않아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법천사지(法泉寺址)는 예상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이곳 유적으로 유명한 지광국사탑비(국보)와 최근 국립박물관에서 옮겨왔다는 지광국사탑(국보)이 어디에 있는지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폐사지에서 만난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탑비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선 유물이 보관된 유적전시관부터 찾았다. 입구 안내판엔 오후 6시까지 관람 시간이며 오후 5시까지 입장해야 된다고 적혀 있었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사정을 얘기하고 관람을 빨리 마치겠다는 조건으로 입장했다.  폐사지에서 발굴된 여러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지만 마음이 급하니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게 되었다. 지광국사탑은 완전히 해체된 상태로 별도 공간에 전시되고 있었는데, 사진에 남아 있는 전체적인 조형미와 석재의 섬세한 조각이 비범해 보였다. 전시관을 나와 땅거미가 내리는 가운데 지광국사탑비가 있는 산기슭을 서둘러 올랐다. 비신에 균열과 일부 훼손은 있었으나, 귀부와 이수에 새겨진 조각의 아름다움과 섬세함 그리고 비신 측면에 새겨진 두 마리 용의 생동감이 돋보였다. 탑비 앞에 ‘아름다운 절정, 영혼이 머문 자리’라 적힌 안내문이 지광국사탑의 원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유적전시관에 해체 전시된 석재가 하루 빨리 제자리에 복원돼 아름다운 탑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 바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운전할 때 서둘지 않는 성격이지만 거돈사지(居頓寺址)로 향하는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주변은 벌써 어두워지는데 예정된 답사는 마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돈사지 입구에 차를 세우려는데 뜻밖에 차들이 몇 대 주차돼 있고 환한 불빛이 보여 반가웠다. 얼른 계단을 올라 절터로 들어서니 우뚝 솟은 3층 석탑(보물) 주위로 다양한 모양의 조명등이 에워싸고 있었다. 주변에 방문객들도 댓 명 보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폐사지에서 ‘도자설치 작업전’을 열고 있는 중이라 했다. 비록 예술가의 작업전에 초대 받지는 못했지만, 폐사지 답사 시간에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것이 반가웠다. 마침 탑 뒤에 있는 동산 위로 둥근 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신라시대 세워진 석탑에 자연의 밝은 달과 현대 도자 조명이 비추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석탑 뒤 금당 터에는 석불대좌가 놓여 있고 산기슭에 어렴풋이 보이는 석물은 ‘원공국사승묘탑’으로 짐작되었지만, 어두워져 더 이상 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거돈사지 입구 석축 가장자리에 밑동이 묘하게 휘어지고 단풍이 곱게 든 느티나무 노거수가 있었다. 수령이 1,000년이나 되는 보호수라니 절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고목인 셈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어스름 달빛 속에서 오랫동안 바라왔던 원주 폐사지 답사를 무사히 마쳤다.

 

(흥법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