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살며 생각하며 31

망중한(忙中閑)의 즐거움

망중한(忙中閑)의 즐거움 (2024.4.14.) 지난주에는 꽃모종을 사 와 화분에 심고 분갈이를 하느라 바쁘고 힘든 한 주를 보냈다. 어제는 신록의 남산공원길 산책을 다녀왔다. 오늘은 힘든 일일랑 하지 않고 편히 쉬면서 심신을 재충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겠다. 벌써 초여름이 찾아온 듯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고 덥덥한 기운마저 감돈다. 하늘정원에 올라가 파라솔을 펼치고 그 아래 앉아 싱그러운 보리수꽃 향기를 맡으며 책을 읽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를 읽으며 모처럼 책 속에 빠져들었다. 딸랑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소리가 나는 보리수나무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지붕과 나뭇가지에 길게 매달린 풍경이 살랑살랑 바람결에 흔들리며 은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아래 화..

정지용 문학 탐방과 대학 새내기 시절 추억

정지용 문학 탐방과 대학 새내기 시절 추억 (2024.3.30.) 주말 오후에 중학 동창들과 ‘정지용 문학 탐방’에 참여했다. 지하철 3호선 녹번역 2번 출구에서 만나 여류시인의 안내를 받았다. 산기슭 아파트 사이로 난 비탈길을 한참 오르자, 주택가가 끝나는 곳 산 쪽에 축조된 커다란 옹벽에 정지용의 시 ‘녹번리’가 적혀 있었다. 부근 공터에 걸터앉아 정지용 시인의 약력과 6.25 동란 중 행적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산에는 노란 개나리꽃과 벚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불광동 쪽으로 걸었다. 한참 가다가 꺾어져 이면도로로 들어서니 ‘정지용길’이라는 작은 뒷길이 나왔다. 그 길 중간쯤에 있는 연립 주택 건물에 ‘정지용 초당(草堂) 터’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

새로 산 컴퓨터와 블로그 작업

새로 산 컴퓨터와 블로그 작업 (2024.3.9.) 집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여 년 정도 된다. 아들, 딸의 컴퓨터를 잠깐 빌려 쓰다가 출가한 후에는 내 차지가 되었지만, 이미 구닥다리가 된 상태였다. 근래 들어서는 사위가 사용하던 것을 빌려 썼다. 컴퓨터 이용 초기에는 주로 디지털 사진과 동영상을 저장했지만 점차 블로그 작업으로 발전해 갔다. 손주들의 성장 과정과 나의 취미생활이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는 내용이다. 예전엔 구닥다리 컴퓨터를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었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이 향상되니 사용 데이터의 용량이 증가해 처리 속도가 떨어졌다. 게다가 CPU나 모니터가 말썽을 부려 작업을 하다가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긴다. 참고 참아 오다가 큰마음 먹고 새 컴퓨터를 들이기..

긴 시간 여행

긴 시간 여행 (2023.11.18.~19) 어머니를 뵈러 마산 가는 길에 선영에 들러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윗대 조상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장거리 운전이 힘들어지면서 명절이나 선친 제사 때 기차를 이용하니, 선영에 들리지 못하고 상경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승용차를 이용해 산소 성묘를 하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드라이브를 함께 할 계획이다. 점심때가 지나 선영에 도착해 선친과 조부모님 산소에 웃자란 풀들을 정리한 후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추석 무렵에 벌초를 해 선영 주변이 깨끗해 보였다. 5대조로부터 증조부, 종조부, 종숙부 산소를 둘러본 후 합배단에서 인사드리고 삼강려(三綱閭)에도 잠시 들렀다. 마산 본가에 도착하니 창녕 여동생 내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어머님께 문안 인사를 드..

에어컨 없이 여름나기

에어컨 없이 여름나기 (2023.8월) 한여름에도 집에 에어컨 켜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에어컨은 한 번 켜면 계속 가동하게 되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찌뿌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 년이면 불볕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며칠을 빼고는 선풍기로 여름을 난다. 물론 나는 회사 근무 시간에 에어컨 아래 있지만, 집사람은 하루 종일 구경도 못한다. 올 여름도 그렇게 견디어 오다가 열대야가 심한 8월 초 금요일 저녁에 이심전심으로 에어컨을 켜려고 마음먹었다. 작심하고 에어컨을 켰지만 웬일인지 찬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점검을 받았더니 실외기가 삭아서 제대로 고치기 어렵다고 했다. 올해는 그냥 선풍기만 켜고 여름을 나야 할 모양이다. 고장 난 에어컨이라도 옆에 있으니 없는 것보다야 ..

한여름 밤의 분수 쇼

한여름 밤의 분수 쇼 (2022.7.10.)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씨라더니 선풍기로 폭염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면 어지간한 불편은 잊을 수 있다고 하니 독서 삼매경에나 빠져 볼까? 독서를 좋아하는 손주들 생각이 났다. 효과가 있었는지 한낮 불볕더위를 그럭저럭 견디어 냈다. 저녁을 먹고 났지만 후덥지근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예술의 전당으로 산책 나가 음악분수 쇼를 구경하며 바람을 쐬기로 했다. 마지막 공연이 저녁 아홉 시라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첫손주 준모가 어렸을 땐 종종 예술의 전당에 놀러오곤 했는데, 그 후론 뜸해져 근래엔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분수대 앞 잔디광장에 이르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같은 중늙은이도 보였지만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대부..

서울하늘에 뜬 무지개

서울하늘에 뜬 무지개 (2021.7.19.) 지방에서 보낸 소년시절, 여름철에 무지개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개거나 햇볕이 난 상태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면, 어김없이 저편 하늘에 찬란한 무지개가 떴던 기억이 난다. 갠 하늘에서 때 아닌 빗방울이 떨어지면, 야시비(여우비)라 부르며 친구들이랑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야시비가 오는 날엔 ‘호랑이가 장가가고 야시(여우)가 시집간다.’고 했었지... 청년시절 이후 줄곧 서울생활을 해왔지만,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본 기억이 없다. 서울하늘이라고 무지개가 뜨지 않았을 리야 없겠지만,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해 기억에 남지 않은 모양이다. 소년이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설레곤 했는데... 청년이 된 이후로는 편안히..

어떤 친구모임

어떤 친구모임 (2019.7.13.) 친구들 모임을 모처럼 주말에 정하고 팔당대교 남단 부근에서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중학교 동창들이지만 대부분 객지에 나가 공부를 했고 전공과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생각이나 성격도 차이가 많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모임이라 참여율이 꽤 높다. 식사를 마치고 한 친구의 제안으로 기분전환 겸 강바람을 쐬기로 했다. 팔당댐을 건너 덕소 부근 강변에 있는 카페에 들리려고 했지만 교통체증이 심해 지나쳐야 했다. 강변을 따라 내려가다가 찾아든 곳이 미사리 건너편 강북에 있는 미음나루였다. 음식점과 카페로 특화된 동네이지만 낮이라 그런지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한강을 바라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위치한 카페를 찾았다. 건물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평범해 보였는데 ..

마산의 구도심

마산의 구도심 (2018.11.24.) 묘사 준비가 마무리되자 저녁엔 어머님을 모시고 어시장 횟집으로 갔다. 어머님도 잘 아시는 나의 중학교 동창 친구도 자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친구는 몇 년 전부터 매일같이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리고 건강 조언도 하고 있다. 자식도 못하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고 있으니 때로는 민망하기만 하다. 어머님을 내려드리고 어시장 주변 대로변에 주차를 하려니 빈자리가 없었다. 어머님이 집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먼저 약속장소로 가신 것이 다행이었다. 명절 때 생선회를 사러 종종 오던 곳이라 주변지리에 어둡지 않지만 오늘따라 낯설게만 느껴졌다. 주차장을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을 거쳐 구도심 불종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온갖 모양의 화려한 장식등이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