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2018년

축구장 골대 차지

돌샘 2018. 9. 29. 21:26

축구장 골대 차지

(2018.9.25.)

추석을 맞이하여 연휴에 온 가족이 남한산성 부근 음식점에서 만나 점심식사도 하고 가을정취도 느껴보기로 했습니다. 성남쪽 남한산성 입구에 이르자 극심한 차량 정체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다행히 준모가족은 광주방향에서 진입하여 별 어려움 없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준모는 우리를 기다리며 음식점 부근 공터에서 아빠와 배드민턴을 쳤다고 했습니다. 배드민턴은 준모가 최근 새로 시작한 운동인데 상당히 재미있어 합니다. 지우는 엊그제 모기에 물렸던 눈 주위가 벌겋게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안쓰러워 몇 마디 말을 건네려했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까봐 반가움만 나타내었습니다. 우리 귀염둥이 손녀가 추석에 큰 고생을 합니다. 고모부 내외를 몇 개월 만에 만났지만 서먹한 느낌 없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점심으로 먹은 생 오리구이와 부추조림은 입맛에 잘 맞았고 들깨와 수제비를 듬뿍 넣은 오리탕도 별미였습니다. 준모와 지우도 자주 먹어본 음식이 아니란 것을 느끼는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지우는 스마트 폰으로 유 튜브 동영상을 열심히 보았고 준모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고모부와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어린나이와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꽤 잘 쳤습니다. 몸놀림이 많아 힘들 텐데도 셔틀콕을 열심히 따라가며 힘껏 쳐내었습니다. 나중엔 주차장 한쪽 바닥에 판을 깔고 공룡팽이를 돌려 시합을 붙이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도로정체를 감안해서 산성 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집에 다시 모여 놀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은 성남방향이 아닌 광주방향을 택했습니다.

 

유비무환이라 했지요. 차량정체를 피해 광주방향으로 갔더니 별 어려움 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손주들의 절을 받고 추석의 의미를 설명해주자 준모가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준모에게 알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해보도록 했더니 내가 들려주고자 한 내용과 의미상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할애비는 아직 어린애로 생각할 때가 많지만 실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 변모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준모가 공룡팽이 판을 펼쳐놓고 고모부와 나를 번갈아 상대하며 시합을 벌였는데 이기는 확률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팽이를 바꾸어 시합을 해보았지만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비결이 있는 모양입니다. 지우는 고모와 그림그리기도 하고 컴퓨터 방에 올라가 자동차 지붕을 타며 놀기도 했습니다. 고모부를 타고 올라가 목에 걸터앉아 목마를 타고는 깔깔대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준모의 뜻에 따라 고모부와 세 사람은 공을 들고 먼저 서초중학교로 향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도 운동장에서 합류하기로 했지만 지우는 놀이터에서 논다며 새아기가 배드민턴 운동기구와 캐치볼만 가져다주었습니다. 세 사람이 삼각형 대형을 이루고 서서 돌려가며 공차기를 했습니다. 준모는 공을 차면서 힐끗힐끗 주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눈여겨보는 듯했습니다. 추석 다음날이라 그런지 평상시 주말보다는 운동장에 나온 사람들의 수가 적었습니다. 땀을 닦으며 잠시 쉰 후에 준모는 고모부와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날아가는 셔틀콕을 따라 다니느라 활동량이 많아지자 얼굴엔 어느덧 굵은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준모 얼굴의 땀을 닦아주다가 보니 한 세대 전 장충단 공원에서 남매를 데리고 배드민턴 치던 생각이 났습니다. 준모가 혼자서 농구 슛을 하고 있는 청년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보니 농구에 관심이 가는 모양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준모가 공을 농구 골대에 던져 슛하는 시합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야구공 크기의 작은 공으로 세 사람이 돌아가며 골대를 향해 슛을 날렸습니다. 준모가 집에서 장난감 농구골대에 공을 던져 넣을 때는 잘 들어갔지만 성인용 골대는 높아서 잘 들어가지 않으니 은근히 약이 오르는 듯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제법 어둑어둑한 상태에서 야간조명을 받으며 축구 슛 연습을 했습니다. 이제 집에 갔으면 했지만 준모는 조금만 더 하자며 운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마침 축구골대가 비자 준모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고 본격적인 슛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골대를 향한 슛 연습은 저번부터 하고 싶어 했으나 중학생들이 먼저 차지하고 있어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할애비도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라 실컷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언제 또 골대를 차지하여 슛 연습을 할 수 있으련지 불확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널티킥하는 자리에 공을 놓고 슛 연습을 하는데 준모는 땅볼과 공중 볼 그리고 슬라이딩 슛을 번갈아 가며 시도하였습니다. 나중에 블로그의 사진을 찾아보니 3년 전 10월, 준모가 네 살일 때도 이곳 축구장에서 비닐공을 차며 좋아하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지우는 아빠와 함께 아파트 중앙광장에 나와 놀며 선글라스를 끼고 예쁜 사진도 찍었습니다. 어른이라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여 끙끙대며 앓고 누웠을 텐데... 지우는 고모와 이야기도 나누고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렸습니다. 저녁때에는 할머니, 아빠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서 피자와 통닭을 사 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혼자말로 많이 나았다고 했답니다. 지우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눈 주위의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주위에 내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어린마음에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도 많이 아팠을 겁니다. 놀이를 할 때는 오빠가 하는 것을 보고 자라 왈가닥 기질이 있지만 말과 마음은 얼마나 부드러운 여성성을 가졌는지 모른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준모와 지우의 춤판이 벌어져 모두들 즐겁게 여흥을 즐겼습니다. 준모가 메모지를 들고 좌중 앞으로 나와 내년 봄에 태어날 고종의 이름을 공모해 정하자고 나섰습니다. 먼저,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쭉 적고 한 사람씩 제안하는 이름을 말하도록 하였습니다. 준모는 본인이 제안하는 이름을 당당히 말하고 지우도 제안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참석한 사람과 제안한 이름을 종합해서 쭉~ 이야기해 주고, 다른 사람이 제안한 이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이름을 하나씩 고르도록 하여 최적의 이름을 좁혀나갔습니다. 공정하게 사회를 보는 척하면서도 자기가 제안한 이름이 많이 추천되도록 재촉하는 말을 은근슬쩍 보태어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내년에 예쁜 고종이 태어나면 이름을 지을 때 외사촌 오빠가 일조를 했다고 알려주어야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 지우를 찾으니 주위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우야! 지우야~’ 하며 큰소리로 여러 번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찾아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에야 거실 베란다 나가는 벽에 기대어 숨어있던 지우를 찾아내곤 작은 소동이 마무리되었답니다. 요즘 지우가 간간이 살짝 숨는 행동을 보이는데 자신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다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번 추석 가족 모임은 서울근교에서 별미를 먹는 것으로 시작하여 손주들의 재롱을 보고 의젓한 성장을 느끼는 가운데 보냈습니다. 추석의 의미와 관례 그리고 현실적인 제반여건을 고려해서 더 편안하고 보람된 날을 맞이할 방안이 없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내년 봄에 준모의 예쁜 고종이 태어나면 내년 추석 가족모임에는 한 사람이 더 많아져 기쁨도 그만큼 커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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