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2018.9.16.)
오늘은 반포 한강변에서 ‘서리풀 축제’의 일환으로 ‘그림 그리기’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지우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단체로 참여하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행사 날 손주들이랑 한강변에서 만나 논다며 어제부터 준비한 김밥을 쌌습니다. 그런데 어째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행사시간이 다가와도 하늘은 잔득 흐리고 간간이 비를 뿌려대었습니다. 할머니는 낭패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준모네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준모가 전화를 받아 오늘 행사와 관련된 일은 자기가 결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고는 비가 그치면 반포 한강변에서 만나고 비가 계속 오면 할머니 집으로 오겠다고 하였답니다.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중요한 결정은 준모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답니다. 결국 비는 그치지 않았고 반가운 손주들은 우리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준모와 지우는 각자 준비해 온 놀이용품들을 가방에서 끄집어내었습니다. 준모가 가지고 온 용품 중에는 포장을 벗기지 않은 ‘포켓폰 카드’와 낯선 물건이 들어있었습니다. 뭔지 물어보았더니 ‘호비 장기’라는 어린이용 장기라 하였습니다. 준모의 설명을 듣고 조손이 장기 대국(?)을 벌이는데 어딘지 준모가 창안한 내용이 가미된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준모가 압승을 했지만 어른들이 두는 장기와 원리가 같아 내가 이기는 판도 생겼습니다. 준모가 상으로 받은 것이라며 캐치볼 기구를 내놓고 던지고 받는 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기존 캐치볼은 테니스공에 찍찍이를 붙인 것으로 바닥에 떨어지면 소리와 울림이 생겼는데, 이것은 헝겊으로 만든 것이라 가벼워 떨어뜨려도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 실내놀이에 적합했습니다.
준모와 지우는 창밖을 내다보며 비가 그쳐 밖에서 뛰놀기를 바랐지만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우가 가방에 넣어온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내놓았습니다. 남매가 오늘 그림 그리기 행사에서 선보이려고 준비해 왔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로 했습니다. 준모는 무지개가 뜬 아름다운 경치와 화분이 가득 찬 이층집에서 노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지우는 한 장에는 오빠와 같이 무지개를 그렸고 다른 한 장에는 거북이를 그렸다고 하였습니다(흑백 그림은 지우가 일전에 그렸던 그림). 사람들이 많이 모인 행사가 아니다 보니 분위기상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둘러앉아 할머니가 어제부터 준비한 김밥과 방금 사 온 통닭을 내놓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야외에서 먹으려고 싼 김밥이지만 비 오는 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웃으며 먹는 것도 별미였습니다. 식사 후에도 조손은 실내에서 캐치볼을 하며 운동장에서 뛰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준모는 나의 손을, 지우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며칠 후 추석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습니다. 비가 내려 그림 그리기 행사는 불발이 되었지만 손주들의 재롱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