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2~3세

할머니 댁 옥상에 피서 갔어요

돌샘 2014. 8. 6. 22:19

할머니 댁 옥상에 피서 갔어요.

(2014.8.2)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8월 초 주말. 준모가 할머니 댁에 놀러 온다는 전화를 받은

어제 밤에 대야 2개에 물을 받아놓고 오늘 오전에는 파라솔을 펴고 테이블과 의자에 물을 뿌려

열기를 식히는 등 조손의 피서 준비를 미리 해두었습니다.

낮 12시가 조금 지나 준모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물! 물!’하면서 할애비 손을 끌어당기며

하늘정원으로 올라가 정원급수용 분사기를 찾아들고는 익숙한 솜씨로 물을 뿌려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화단과 화분 그리고 벽과 바닥을 향하던 물줄기의 방향이 서서히 할애비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손자와 모처럼 도심 아파트 옥상에서 피서를 할 요량으로 차림을 하였기에 물세례를 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범이 준모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여 옥상 출입문을 여는 순간

준모가 망설이지 않고 물벼락을 날리니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문은 닫혀버렸고 조손만의 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일찌감치 온몸이 흠뻑 젖어 시원해졌는데 준모는 더워하는 것 같아 발과 다리에 물을 뿌려주었더니

좋아하며 분사기를 받아들고는 자기 몸을 향해 물을 분사하는 자세를 취했지만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면 아플 것 같으니 조심하느라 물을 제대로 뿌리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물줄기가 물방울로 분산되도록 조절하여 하늘을 향해 뿌리니

곧 조손의 머리위로 세찬 소나기마냥 시원한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준모도 물을 맞으니 시원해서 좋은지 몸을 좌우로 비틀면서 깔깔대고 웃으며 신이 났습니다.

물놀이에 더위는 가셨지만 허기가 지기 시작하여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놀기로 하였답니다.

 

두 번째 물놀이 할 때는 할애비가 바지만 입혀주었는데

세 번째 물놀이 할 때는 할머니가 준모의 옷을 모두 벗겨주었습니다.

준모가 옷을 벗고 노니 편한 점도 있었지만 사진을 찍을 때 조심해야 하고

사전검열(?)을 하여 도련님의 체통과 관련된 사진은 모두 지워야했습니다.

아범이 비눗방울 놀이기구를 가져다주니 준모가 몇 번 비눗방울을 날리고는 할애비더러 날리라고 하였습니다.

건전지를 이용한 비눗방울기구를 할애비가 처음 보았을 테니 한번 해보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비눗방울을 날렸더니

준모가 가지고 있던 분사기의 물줄기가 별안간 비눗방울과 할애비 쪽으로 세차게 날아들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준모가 ‘잡았다. 잡았다~ 두 개. 두 개!’라고 큰소리치며 의기양양해 하였습니다.

내가 비눗방울을 날리면 분사기로 맞혀 터뜨리려고 미리 계획한 행동이었나 봅니다.

지난번에 하늘정원에서 물놀이를 할 때는 준모가 높이 날고 있던 잠자리를 겨냥하여

물줄기를 힘껏 내뿜었지만 미치지 못하였던 적이 있었지요.

물줄기로 움직이는 물체를 맞히려는 개구쟁이의 심리에다

날아가는 비눗방울을 보고 하늘을 날던 잠자리를 연상하고 비눗방울이 멀리 날아가기 전에

쏘면 맞힐 수 있다는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놀이를 창조하였나 봅니다.

 

물놀이를 마치고 컴퓨터 방에 들어가더니 필통에서 파란 볼펜을 꺼내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다가

내가 다가가니 빨간 볼펜을 꺼내주면서 같이 하자고 하였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컴퓨터를 켜고 소파에 기대어 코코몽을 보면서도

할애비가 종이를 잡도록 하고 무언인가를 열심히 그렸습니다.

거실에 내려가려고 할 때 할머니가 들어와 준모야! 노래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

‘아빠 곰을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하며 노래를 제법 잘 불렀습니다.

할애비는 준모가 가사를 외워 부르는 노래는 처음 들었으니 신기하기만 하였지요.

할머니가 다른 노래 ‘폴리’ 해보라고 하니 ‘같이 해. 같이 해.’하였지만 가사를 몰라 가만히 있으니

준모가 혼자 흥얼거리면서 ‘~~폴리~~’라며 노래의 일부분을 불렀답니다.

가사가 쉬운 노래를 배워주면 곧잘 부를 것 같았습니다.

거실에 내려와서는 조손이 공차기를 하였는데 준모가 공을 한 번 차고 전화기 앞에 있는 메모지에 볼펜으로 무얼 쓰고

또 한 번 차고는 쓰는 행동을 반복하였는데 할머니가 ‘준모가 공을 찬 내용을 무언가 기록하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공놀이를 할 때 할애비가 창가에 서도록 준모가 위치를 지정해 주었으며

놀이를 하면서 과일 한 조각을 먹었더니 준모가 ‘먹지 마.’하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이윽고는 앉아서 공을 던져주지 말고 서서 공을 차라고 ‘앉으면 안 돼! 앉으면 안 돼!’하는 명령이 떨어졌답니다.

 

조손이 아파트 옥상에서 함께 보낸 한여름의 피서는 준모가 집으로 돌아갈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준모는 차를 타고 출발하자마자 곧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손자 덕분에 멀리가지 않고 집안에서 찜통더위를 날려 보낸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준모야! 한여름 할애비와 함께 하늘정원에서 보낸 피서. 마음에 들었니?

이제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였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날도 멀지 않은 모양이다.

가을이 오면 자전거를 타고 외출하여 이곳저곳 둘러보자구나.

우리 도련님! 더위에 지치지 말고 건강하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