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2~3세

할머니 돈 있어요?

돌샘 2014. 8. 12. 22:05

할머니 돈 있어요?

(2014.8.10)

한여름의 무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는데도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부니 초가을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준모가 하늘정원에서 물놀이를 하고 내려오자 할머니가 사두었던

‘고래밥’이라는 과자를 주었는데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습니다.

할머니나 고모가 하나 달라고 하면 준모가 얼른 자기 입에 하나 넣고

한 손으로는 먼저 자기 몫의 과자를 쥔 후에 다른 손으로 과자를 하나 먹여주었습니다.

공놀이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하도록 과자그릇을 거실 한가운데 두고 공을 차려고 하였습니다.

과자를 한쪽 옆에 두고 공을 차야 한다고 말했더니

할머니와 고모가 앉아 있는 옆에 과자그릇을 두면서 ‘먹지 마!’하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공놀이 도중에 과자를 한두 개 집어 먹고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멀리 떨어진

식탁 위에다 올려놓고 공을 차다가 틈틈이 뛰어가서 과자를 먹고 왔습니다.

 

할애비에게 외출을 하자고 하여 무작정 따라 나섰으나

준모는 갈 곳을 미리 마음속에 정해두었던 모양입니다.

아파트를 내려와 중앙광장을 지나고 후문으로 가서는 버턴을 누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도라 안아주려고 하니 처음에는 싫어했는데 차가 연속으로 여러 대가 오자

‘차가 왜 많이 오지?’하면서 슬그머니 안겨 왔습니다.

할애비는 조금 걷다가 돌아갈 요량으로 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틀자

'아니야. 아니야!'하면서 계속 앞으로 가자고 손짓하였습니다.

‘준모야! 어디 갈거니?’하고 물으니 ‘슈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슈퍼가 어디 있지?’ 물으니 허리를 펴고 멀리 쳐다보기만 하더니

간판이 보이자 ‘저기. 저기!’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이 났습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내려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준모는 무엇을 찾는 듯 진열대를 유심히 살피면서 이곳저곳으로 분주하게 다녔습니다.

‘준모야! 무엇 찾니?’하고 물었더니 ‘포도. 포도!’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준모야! 포도는 집에 있는데.’했더니 ‘아니. 아니!’하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조금 지나자 매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하기에 안아서 높은 곳에 진열된 과일 중

포도를 가리키며 ‘준모야! 여기 포도 있다. 이것 찾니?’하고 물었지만 ‘아니’하였습니다.

그제야 준모가 찾는 것이 과일 포도가 아니고 지난번에 할머니와 함께 슈퍼에 가서 사온,

봉지에 포도가 그려진 젤리(상품명 : 마이구미)를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순간 할애비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준모와 집 부근에 외출하면 의례하듯 핸드폰만 챙겨 나왔지 지갑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고모에게 전화를 하여 돈을 가져오게 할까 그냥 돌아가나 망설이다

준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결정하려고 일단 매장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준모가 매장에서 직접 과자를 찾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할애비 사정을 짐작하였는지 조르지 않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고모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할머니가 ‘준모야! 할머니하고 같이 슈퍼 갈래?’하니

‘예’하고 대답하고는 ‘한기(할머니) 돈 있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돈 있다.’하고 대답을 했는데도 준모가 할머니 지갑을 꺼내어 돈이 있는지 확인을 하였습니다.

 

준모가 돌아올 시간에 마중을 나가 아파트 후문 근처에서 만났는데

과자봉지를 손에 들고는 기쁜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왔습니다.

과자를 두 봉지 사왔는데 큰 봉지 하나에 작은 봉지 두 개가 들어 모두 네 봉지였습니다.

준모가 한 봉지씩 나누어 주는 과정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고는 준모부터 봉지를 뜯어주었습니다.

먹어보니 맛이 무척 좋았던지 준모가 방금 나누어주었던 과자봉지를 모두 회수하였습니다.

한입에 여러 개를 움켜 넣고 먹기 시작하였는데 하나를 달라고 사정을 하면

봉지에 들은 것은 손대지 않고 입에 넣었던 것을 겨우 하나 빼내어주었습니다.

과자를 먹고 나서 고모가 노트와 색연필을 가져다주면서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더니

할애비에게도 연필을 하나 건네주며 같이 그리자고 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전화기 앞에 놓여 있던 메모지를 가지고 와서는

메모지 한 장에 색연필 한 자루씩 짝을 지어 거실에 쭉 배열을 하였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처럼 보였는데 준모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갈 시간도 되고 비도 내리기 시작하는데

준모는 다시 하늘정원에 나가 물놀이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비가 오는 것을 보여주고 비 올 때는 물놀이 하면 안 된다고 타일렀지만

돌아온 대답은 할애비에게 물세례를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범이 집에 가야 한다면서 데리고 내려왔는데 준모가 거실에 흩어져 있던 메모지를 치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모가 ‘준모가 치우지 않으면 준모 아빠에게 치우도록 하려고 했는데 준모가 잘 치우네.’하였더니

준모가 ‘아빠 이거 치워’하면서 들고 있던 메모지 통을 아빠에게 건네주고

자기는 색연필을 주워 필통에 차곡차곡 챙겨 넣고는 지퍼까지 야무지게 닫아 정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준모야! 할애비와 만나 놀다보면 네 낮잠 자는 시간을 놓쳐버리기 일쑤구나.

저녁에라도 푹 자거라. 피곤은 그 때 그때 풀어주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단다.

그리고 다음에 외출할 때는 할애비가 지갑을 꼭 챙겨나가마. 안녕...우리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