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새벽녘 호텔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받고 ‘산토리니’로 가는 피레우스 항구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승객들 중에는 단체관광을 하는 중국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는 객실 뱃머리 쪽 테이블을 선점하여 8시간 정도 소요되는 승선을 비교적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출발 후 5시간정도 지나자 ‘파로스’ 섬에 도착하여 승객과 차량들을 승,하선시켰다.
선상에서 바라본 해안과 언덕비탈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지중해 푸른 바다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다음 경유지인 ‘낙소스’ 섬에도 외딴 곳에 고대유적지가 외롭게 서있었고
선창가에 들어선 건축물들은 지중해의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따가운 햇볕이 무디어질 무렵 우리가 탄 배는 뱃고동소리를 크게 울리며
높고 가파른 해안절벽아래 위치한 페리 선착장에 서서히 접근했다.
이틀간의 ‘산토리니’ 섬 관광은 자유여행으로 계획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단체구경에 나서고 우리 가족만 순수한 자유여행에 나섰다.
이곳 자유여행을 위해서 부녀가 며칠간 계획을 짜고 많은 자료를 확인했다.
‘피라’ 마을 상가에서 일행과 헤어져 버스를 타고 ‘이메로비글리’ 마을을 찾아갔다.
가파른 언덕에 비탈을 따라 독특한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 하얀 벽, 푸른 지붕,
목욕탕 같이 작은 풀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망중한을 즐기는 남녀들, 골목을 걷는 나그네는 우리가족 세 사람뿐이었다.
시간이 멈춘 꿈속의 마을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담한 집들은 규모가 작았지만 대부분 호텔이며 가격이 상당하다고 한다.
지중해의 쪽빛 바다와 하얀 벽에서 반사되는 햇빛으로 눈이 시렸다.
따가운 햇볕에 얼굴은 붉어지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지만 사진촬영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늘에 앉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와 땀을 식히고
석양을 감상할 시간에 늦지 않도록 ‘이아’ 마을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이아’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의 예쁜 가게들과 소문난 명소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바빴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인파를 이리저리 헤치며 석양에 어울리는 전경 사진을 촬영하고
저녁을 예약한 ‘파나리 빌라스’ 호텔식당을 찾았다.
오늘은 집사람 생일이라 대형 랍스터와 스파게티, 문어요리 그리고 레드와인을 주문했다.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여유롭게 앉아 석양이 바다로 떨어지는 광경을 감상하며 별미를 맛보았다.
지중해 특유의 이국적인 야외식당에 앉아 가족끼리 단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종업원에게 생일케이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크림으로 즉석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부녀가 부르는 생일축하노래가 어스름한 바다 위로 조용히 퍼져나갔다.
식당을 나와 ‘이아’ 마을의 색다른 밤풍경을 눈에도 담고 마음으로 느끼며 산책을 했다.
밤늦게 가이드가 알려준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여 맡겨 놓은 짐을 찾았다.
오늘은 즐겁고 황홀한 분위기 속에서 넉넉하고 흐뭇한 저녁을 보냈다.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