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말씀(할아버지와 손자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나의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어머님께서 우리 내외와 손자, 손녀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손주들에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하시면서 들려주신 옛이야기로 들을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는데
내가 할애비가 되고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되새겨 보아야 할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요약하여 블로그에 올려놓습니다.
이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번쯤 음미해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집안에 조부모, 부모, 손자 그렇게 3대가 한집에서 살았는데 조부모는 바깥채에 기거하고 부모는 안채에 살았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거두어 주니 손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바깥채에 계시는 할아버지 곁으로 와서 같이 지내곤 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자가 동네 친구들과 냇가에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기에 할아버지가 물고기 잡는 데 필요한 각종 도구와 점심, 간식거리 등을 잘 챙겨 손자에게 전하면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물고기도 잡고 잘 놀다가 오라고 당부를 하였답니다.
손자와 동네 친구들은 각종 물건들을 나누어 들고 신이 나서 떠들면서 냇가로 몰려갔답니다.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어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 고기를 잡으러 갔던 손자와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가 방에 앉아 은근히 걱정을 하며 손자를 찾으러 냇가에 나가볼까 하고 있는데
밖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이제야 고기를 잡으러 간 아이들이 돌아왔나 하고 안심을 하였답니다.
그리고는 손자가 친구들과 무엇을 하며 놀았고 어떤 고기를 얼마나 잡아왔나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러 들어오기를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밖이 조용해지는 것을 보니 동네 아이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 모양인 데
손자가 할아버지께 인사하러 들리지 않고 아범, 어멈이 있는 안채로 바로 가버린 모양입니다.
할아버지가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으니 손자에게 좀 서운한 생각이 들더랍니다.
평소에 손자를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오늘은 고기를 잡으러 간다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챙겨 주기도 하였는데
다녀왔다고 인사도 하지 않고 안채로 가버리다니... 한참을 섭섭해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밖에서 손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윽고 방문 밖에서 아범, 어멈이 ‘아버님 계십니까?’하는 인사를 하고는 방문이 열리더니 상을 들고 들어오더랍니다.
손자도 같이 들어오고요. ‘그래,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멈이 ‘아이가 친구들과 냇가에 가서 고기를 잡아왔기에
아버님 드리려고 매운탕을 끓여 왔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할아버지가 전후 사정을 가만히 듣고는 무릎을 치며 감탄하면서 하는 말이 ‘그렇다. 효도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손자가 친구들과 냇가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 왔으면 부모에게 잘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옳은 도리요.
잡아온 고기가 있어 매운탕을 끓였으니 아범, 어멈이 부모에게 먼저 권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만일 손자가 고기를 잡아 바깥채에 있는 할아버지에게로 바로 왔다면 손자는 외부 출입을 하고 돌아와서는
부모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도리를 어기게 되었고 아범, 어멈은 이를 서운해 할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효도할 기회도 놓치지 않았겠느냐?’하며 잠깐 동안이나마 본인이 손자에게 서운한 생각을 가졌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손자를 더욱 더 아끼고 사랑하였답니다.”
'집안의 일상사 > 어머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님 미수(米壽) (0) | 2013.05.23 |
---|---|
문안 전화 (0) | 2013.03.04 |
어머님 문어 오리기 (0) | 2012.01.29 |
어머님 불경 필사 (0) | 2010.10.05 |
우리들의 희망 (0) | 2010.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