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할애비를 깨우쳐 주는구나

돌샘 2013. 5. 23. 16:07

할애비를 깨우쳐 주는구나

(2013.5.16)

회사 근무를 하다가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준모를 보러갔답니다.

회사 근무시간에 손자 보러간다고 하면 임직원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터이니 약속이 있어 외출한다고 일러두었지요.

현관문을 들어서자 준모가 거실에서 놀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쳐다보더니 곧 미소로 할애비를 반겨주었답니다.

아마 예기치 않은 사람이 나타나니 처음에는 의아했던 모양입니다.

준모가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기온도 높고 햇볕도 따가워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나갈 요량으로 텐트 안과 밖을 기어 다니면서 술래잡기도 하고

볼풀에 들어가 그림책 보는 것을 지켜도 보고 오르간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손뼉도 치면서 놀았답니다.

준모가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려 하기에 발바닥에 먼지 묻는다고 몸짓을 했더니

슬리퍼를 가리키며 할애비가 그것을 신고서 자기를 안아달라는 몸짓을 하였답니다.

준모가 시키는 대로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에서 안아주었더니

밖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는 모습이 외출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모른 체하고는 잠시 후 거실에 들어와 내려주었더니 작은 방에 들어가서는 할머니 모자를 가지고 나왔답니다.

할머니와 외출할 때 필요한 물건이니 외출하자는 뜻이겠지요.

할머니가 준모 외출복과 양말을 가져와 입히고 신기니 다리를 쭉 뻗고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주었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기고는 할애비가 손을 잡고 집을 나서니

뒤돌아 할머니를 쳐다보는 모습이 할머니는 같이 가지 않느냐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이제는 현관문을 가리켰습니다. 아마 현관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아파트 앞 소공원에 갔더니 벤치에 할머니들이 앉아 쉬고 있었고

옆에 준모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기에 ‘준모야! 저기 애기 있다.’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준모가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면 할애비는 뒤따라가고 바닥이 굴곡져 넘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는

손을 잡아주기를 반복하다가 왠 아주머니가 벤치에 앉아서 애완견에게 빵을 먹이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준모가 그곳에 천천히 다가서서는 손가락으로 강아지를 가리켜며 ‘어~,어~’하고 말을 합니다.

준모가 할애비에게 그림책에서 보았던 강아지가 저기 있다고 가르쳐주는가도 모릅니다.

준모가 모자를 쓰기는 했지만 아직 한낮이라 햇빛이 강합니다.

할애비가 햇빛을 등져서 준모에게 그늘이 지도록 하여 애완견 옆 벤치에 앉으니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답니다.

아주머니가 애완견을 안고 가버리자 여중생 두 명이 인공개울가에서 물장난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안긴 채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준모가 잠이 오거나 더위를 느끼는 것 같아

집으로 가자고했더니 평소와는 달리 별다른 거부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순순히 집으로 향했습니다. 

낮잠 자는 시기를 놓쳤는지 집에 와서도 계속 놀다가 다시 외출하자는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이번에는 준모를 유모차에 태우고 조부모가 양쪽에서 호위를 하며 뉴코아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가는 중간 중간에 준모가 무엇을 하는지 혹시 자지나 않는지 궁금하여 유모차를 세우고

얼굴을 쳐다보면 계속가자고 앞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하였답니다.

한번은 할애비가 얼굴을 마주보면서 ‘준모야!’하고 부르니 양쪽 팔을 뻗으며 유모차에서 내리려 하기에

‘준모야! 아직 더 가야하는데’하고 말했더니 말뜻을 알아듣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답니다.

뉴코아에서 할머니가 물건 한두가지를 사는 동안은 실내가 시원하니까 졸리는 표정이었지만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밖으로 나오니 곧 잠이 들었답니다.

 

집 현관에 도착하여 유모차에서 잠든 준모를 안아 올릴 때까지는 잠이 깨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안아서 요 위에 눕히도록 넘겨주는 과정에 잠이 깨었답니다.

큰소리로 울지는 않았지만 칭얼대면서 방에 들어가서는 엄마 옷을 가지고 나와

몸에 둘둘 감고는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며 일어났답니다.

할머니 말로는 준모가 기분이 안 좋거나 할머니가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아 엄마생각이 나면 저런 행동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답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퇴근(?)을 하여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아쉬운 마음에 준모를 조금 더 안아주려다가 할애비 목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모습을 보고 돌아왔는데

오늘은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겠습니다.

현관에 서서 ‘준모야! 빠이~빠이~’하고 손을 흔들어 주니 거실에 서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현관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할애비가 직접 안지 않고 할머니가 준모를 안도록 하였답니다.

할애비가 현관문을 나서자 준모가 할머니에게 손가락으로 내가 있는 쪽을 가리켰답니다.

할머니도 현관문을 나서자 준모가 다시 외출하고 싶은지 엘리베이터를 가리키기에

할애비가 현관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준모야! 현관문이 열려있어서 할머니는 외출 못한다.’고 이야기했더니

말뜻을 알아듣는 듯 현관문을 쳐다보고는 더 이상 외출하자는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준모가 아직 말문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손짓, 몸짓, ‘어~어~’하는 소리만으로도

조손간에 50~60% 이상의 의사전달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준모야! 오늘 네가 선잠이 깬 후에 칭얼대면서 엄마 옷을 몸에 둘둘 감고

몇 차례 뒹굴다가는 기분이 다시 좋아지는 것을 유심히 보았단다.

그래 이 세상에 엄마의 사랑만큼 포근하고 아늑한 것은 없단다.

할애비도 내일은 어머님(준모 증조모님) 뵈오러 고향에 가는데 잘 해드려야겠다.

네가 할애비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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