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외출하고 싶어요

돌샘 2013. 5. 3. 23:13

외출하고 싶어요

(2013.4.29)

오늘은 회사에서 조금 일찍 퇴근하여 준모(俊模)를 보러갔답니다.

현관을 들어서니 준모가 거실에서 미소로 맞이해 주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할애비 얼굴이 낯설어서 그러나’하고 생각하며 소파에 앉아 있는데 잠시 후 준모가 외출용 잠바를 들고 나와서는

거실바닥에 놓고는 할애비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러면 그렇지...

자주 보지는 못하였지만 준모가 할애비를 낯설어 하지는 않겠지요. 할애비와 같이 외출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조손(祖孫) 두 사람만 외출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할애비 마음도 적잖게 설레었지요.

할머니가 외출복을 갈아입히고 유모차에 태워 안전벨트를 매어주니 준모가 손가락으로 현관문을 가리켰답니다.

유모차를 끌고 현관문을 나서자 준모가 현관 안에 서있는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할머니는 왜 함께 외출하지 않느냐?’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 있는 곳에 도착하자 준모가 버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누르라고 가르쳐주었답니다.

1층 출입문을 나서 경사로를 내려오자 준모가 다시 아파트 정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외출을 할 때는 그 곳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할애비가 유모차를 끌고 먼저 아파트단지내 놀이터에 가니 도착 즉시 내려달라는 의사표현을 하였답니다.

안전벨트를 풀고 유모차에서 내려주니 미끄럼틀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계단을 오르려고 하기에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더니 한 계단 한 계단 쉼없이 위로 올라가 정상에 도달하니

준모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려고 망설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나는 양복을 입은 상태라 준모를 안고 탈 수도 없고 혼자 타게 하기에는 위험하고 잠시 난감했습니다.

준모를 일으켜 세우고는 ‘준모야 여기 가만히 서있으면 내가 내려가서 밑에서 손을 잡아 줄께’하고는

급히 계단아래로 내려오면서 준모를 쳐다보니 의젓하고 늠름하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답니다.

내려와 아래에서 손을 잡아주니 망설이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더니 미끄럼틀을 타고 쭉~ 내려왔답니다.

미끄럼틀을 한번만 타고는 다시 아파트 정문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준모를 유모차에 다시 태워 갈 요량으로 안아서 유모차에 태우니 싫다고 하였답니다.

아파트 정문 쪽은 굴곡이 많고 턱진 곳도 있고 차도 다니기에 준모 손을 잡고 안전하게 가려고하니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앞서는지 할애비 손을 뿌리쳤답니다.

하는 수 없이 한 쪽 팔로는 준모를 안고 한 쪽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면서 아파트 출입로를 가로질렀는데

한 쪽 손으로 유모차를 원하는 방향으로 미는 것이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답니다.

정문 밖 인도에 이르자 준모가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주었더니 혼자서 저 앞쪽으로 뛰듯이 달아났답니다.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이 할애비 마음도 아프겠지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터이니 그냥 둘 수야 없었지요.

유모차를 그 자리에 세워두고 뛰어가서 준모 손을 잡으니 자기 마음대로 놀고 싶은 마음에 잡은 손을 뿌리치곤 하였답니다.

반강제적으로 손을 붙잡고 아파트 앞 소공원 안의 평평한 곳에 이르러서야 ‘준모야 여기 있어야 된다.’하고는

뛰어가서 유모차를 끌고 왔답니다. 조금 전 미끄럼틀 위에서는 순간적이고 짧은 시간이였지만 이야기 한대로 가만히 서있었는데

공원의 평지에서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자기 마음대로 걸어 다녔답니다.

 

공원에서는 유모차를 한쪽에 세워 놓고 준모가 가는 곳을 따라 다녔는데

연못속의 바위에서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목재 데크도 두세 번 왕복해보고 화단의 꽃들도 바라보았답니다.

공원 바닥과 데크 사이에는 꽤 높은 단차가 있어 올라가거나 내려올 때 넘어지기 쉬워

잡아주려고 손을 내미니 자연스럽게 손을 꼭 잡았답니다.

평지에서는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으려고 하면 손을 뿌리쳤는데 단차가 있는 곳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여 스스로 손을 잡는 듯합니다.

공원에서 조손이 이것 저것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애완견이지만 인상도 사납고 덩치가 꽤 큰 개(犬)를 끌고 나왔습니다.

준모가 개를 전혀 겁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서 신기한 듯 미소를 지으며 유심히 쳐다보았답니다.

튼튼한 개 목줄은 잡고 있었지만 준모에게 위험할 것 같아 빨리 지나갔으면 했는데

준모가 관심을 보이니 개 주인도 기분이 흡족한 듯 빨리 지나가지 않고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벤치에 앉아있던 중고등학교 여학생들도 개가 주위로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가버렸는데

준모는 겁도 나지 않는지 개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였답니다.

개가 갑자기 달려들 수도 있는 일이기에 할애비가 개로부터 3~4m 떨어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준모를 감싸 안은 상태에서 가만히 구경하도록 하였답니다.(험상궂은 애완견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상황이 실감날 텐데

그때야 혹시나 개가 준모 쪽으로 달려 들까봐 사진을 찍을 마음의 겨를이 없었답니다.)

 

아파트 앞 소공원에는 주민들이 쉽게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책이 진열된 책장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준모가 이를 발견하고는 다가가서 할애비에게 책장 문을 열어 달라고 하였답니다.

책장 문을 열어주니 한참동안 서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진지하게 아래위로 훑어 보았는데

준모가 자기 집 서가에 있는 그림책을 연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어도 움직이지 않고 손을 뿌리치기에

책장의 책을 꺼내 들고 준모 앞에 펼쳐주면서 그림이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외출한지 1시간 가까이 되어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준모는 밖에게 계속 놀고 싶은 모양입니다.

준모를 1층 출입문 안쪽에 안아 내려놓고 유모차를 끌고 와서 준모에게 엘리베이터 버턴을 누러라고 했더니

입가에 가득 미소를 띄우며 재미있듯이 누르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7층을 누르도록 안아 올려주었더니

버턴을 누르며 기분이 좋아져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던 마음은 사라져버렸나 봅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외출복을 벗기고 스마트 폰에 저장된 준모의 동영상을 보여주려고

‘준모야! 동영상 보자’고 했더니 기쁜 듯 할애비에게 다가와

무릎 위에 앉아서는 화면이 나오기를 가만히 기다렸답니다.

몇 분간 동영상을 보고난 후 할머니가 준모를 식탁의자에 앉히고 이유식을 먹이는데

할애비가 사진을 촬영하니 의자에서 일어서고 식탁위에도 올라가려하고 의자에서 내려오려고도 하였답니다.

할머니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일러주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번에도 이유식을 먹을 때 사진을 찍으니 의자에서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했는데 오늘도 같은 행동을 보입니다.

준모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할 때면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준모가 이유식을 먹을 때 식탁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먹지 않은 것은

준모 잘못이 아니라 이 할애비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 준모가 식탁의자에 앉아 식사를 할 때는 사진을 촬영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조금 지나서 준모에게 장난감 오르간을 가지고 놀도록 하니 음악에 맞추어 손뼉도 치고

가끔은 마이크에 입을 갔다대고 노래를 부르는 흉내도 내고 신나게 놀았답니다.

 

저녁때가 되어 집에 돌아가기 위하여 구두를 신고 현관 앞에 서서 ‘준모야! 빠이~ 빠이~’하고 손을 흔드니

준모도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할애비가 아쉬운 마음에  ‘준모야! 할아버지한테 와’하면서 두 손을 준모 쪽으로 뻗으니

준모가 갑자기 뛰어나와 할애비 품에 달려들듯 안겨 왔답니다.

준모를 힘껏 당겨 안고는 추켜세우다가 이윽고 준모를 할머니에게 안겨주고는 돌아서 나오려 하였으나

준모가 할애비 목을 꼭 붙들고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답니다. 다시 외출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다시 외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준모를 할머니에게 안겨주고 돌아서 현관을 나오는데 준모가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도 준모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할애비가 주책을 부렸나봅니다.

'빠이~ 빠이~’하면서 손만 흔들어 주고 그냥 나왔더라면 준모를 울리지 않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준모야! 다음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놀이터에 가서 재미있게 오랫동안 실컷 놀자구나.

그 동안 몸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빠이~ 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