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누구인가?
(2012.11.13)
오늘은 날씨마저 요상하다.
잔득 흐리고 쌀쌀한 날씨에 바람마저 스산하게 불고
살짝 햇빛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끝내 비까지 내린다.
사무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리엔 낙엽이 뒹굴고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남아있는 나뭇잎은
가을의 언저리에 애처롭게 매달려
지난여름 녹음이 우거졌던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났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한나절을 같이 앉아 있어도 아무 말이 없곤 했지요.
그러나 마음은 믿음직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아버님은 성품이 원만하시지는 않았지만
자식에게 직접 화내시는 일은 드물었고
항상 어머님이 대상이 되시곤 하였지요.
팔순을 넘기신 어느 해 명절 전날 밤이였지요.
그날 저녁에 아버님이 어머님께 언성을 높였던 일이 있었나 봅니다.
아버님이 저녁을 드시고 거실에서 잠이 드셨기에
어머님께 무심코 ‘보통 사람들은 연세가 드시면 성품이 좀 원만해진다고 하시는데
우리 아버님은 성품이 여전히 대단하시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런데 아버님이 깊은 잠이 드시지 않아 저의 말씀을 들어셨는지
눈을 감으신 채로 씩~ 웃으시는 표정이 언듯 보였답니다.
문득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던 글로 공감이 가는 문구가 많아
프린트를 하여 집사람과 아들 딸에게 보여 주었더니
예상외로 반응이 시큰둥하여 잊어버렸던 글이랍니다.
오늘 그 글을 다시 찾아 읽고는
나는 자식들에게 내 아버님만큼도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교훈으로 삼고자 그 글을 여기에 올려놓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어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직장이란 곳은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맘속으론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도 생각하고 남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4세 땐,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땐,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땐,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땐,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다.
14세 땐, 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 땐,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 땐,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땐,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땐,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 땐,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아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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