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넷째 해

고모는 어디 있어요?

돌샘 2015. 7. 26. 12:58

고모는 어디 있어요?

(2015.7.18)

준모가 조부모의 마중을 받으며 집에 들어와서는 ‘고모 어디 있어?’하고 물었습니다.

‘고모는 약속이 있어서 나갔단다.’했더니 ‘내가 오는 줄 알면서 나갔어?’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순간 아무 대답도 못하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잘못 대답하면 준모가 고모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 있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부엌 쪽 베란다에 있던 블록 꾸러미를 끌고 와 거실에 풀어놓고

높이 쌓은 후에 비닐공을 던져 무너뜨리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놀이방법은 변경하여 준모가 블록더미 뒤쪽에 서고

할애비가 앞쪽에서 공을 던져 무너뜨리면 재빨리 블록을 피하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준모는 놀이방법을 어떻게 생각해내는지 항상 변화를 주면서 자기주도형 놀이를 유도해내곤 합니다.

오늘도 하늘정원에 나가서는 방울토마토 몇 개를 따고 하얀 장식돌 하나를 가져와

바닥에 놓고 분무기로 물을 분사시켜 굴리는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준모가 기침을 해서 오늘은 옷이 젖지 않도록 물놀이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잘 따라주었습니다.

꽃에 물도 주고 공중으로 분사도 했지만 옷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였습니다.

 

조손이 거실에서 놀 때 할머니가 부엌일하느라 지우 혼자 방에 있을 때 내가 잠깐 방에 들어가

지우와 같이 놀면 ‘하부! 빨리 와~’하면서 재촉하였고 ‘지우 혼자 방에 있는데 잠깐 놀아주고 갈께’하면

‘안 돼! 지우는 할머니가 보고 하부는 나하고 놀아줘’하였습니다.

준모가 놀이도중에 ‘할머니! 짱구 사 줘’하였습니다.

‘짱구’는 과자 이름인 모양인데 처음 들어보는 명칭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슈퍼에 갈 준비를 하면서 ‘하부도 같이 가’하였습니다.

‘준모야! 할아버지는 지우 봐야지. 지우 혼자 두고 가면 안 되잖아.’했더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지우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준모가 사온 과자를 보니 ‘초코 픽’이라 적혀있어 ‘준모야! 과자이름이 초코 픽인 모양인데 왜 짱구라 했지?’하고

물으니 과자 포장지의 그림을 가리키며 짱구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슈퍼에 가서 좋아하는 과자 있으면 더 사라고 권유하여도 하나만 사겠다고 하였답니다.

과자를 먹고는 준모가 블록 두 개를 배 앞에 갖다 대고는 할애비도 따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기가 든 블록으로 내 배 앞의 블록을 힘껏 밀었습니다.

내가 뒤로 물러나지 않고 버티니 준모가 자기 힘에 부쳐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일어나더니 다시 힘껏 밀었습니다.

내가 뒤로 밀려나다가 벌러덩 넘어지니 준모가 깔깔깔 웃으며

큰소리로 ‘할머니! 이리 와 봐. 하부 죽었다’고 외쳤습니다.

빨리 오지 않으니 부엌으로 뛰어가 큰소리로 웃으며 ‘하부 죽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알렸습니다.

‘죽었다’는 말의 의미를 아직 잘 모를 테니 ‘통쾌하게 쓰러뜨렸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배가 고픈지 ‘밥 먹어야 되는데, 아빠 엄마는 왜 안 오지?’ 하였습니다.

‘준모야! 배고프면 먼저 밥 먹어’했더니 ‘아빠 엄마와 같이 먹어야 하는데...’하였답니다.

‘아빠 엄마는 저녁 먹고 온다고 했으니 준모 먼저 먹어’했더니 그제야 밥을 먹겠다고 하였습니다.

네 살배기라면 자기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할 나이인데 정말 올바른 생각의 틀을 잘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놀다가 문득 ‘하부! 슈퍼 가자’고 하였습니다.

‘준모야! 뭐 사려고’ 물었더니 미소를 지으며 ‘짱구’라고 대답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정문 쪽으로 가려고 하니 ‘하부! 이쪽으로 가’하며 후문 쪽을 가리켰습니다.

‘준모야! 우리준모가 하부보다 길을 더 잘 아네’하였더니

‘하부! 내가 길 잘 알지. 저리로 가면 슈퍼 있어’하며 앞장 서 걸었습니다.

후문 부근 놀이터를 지날 때는 초등학생들이 몇 명 놀고 있는 광경을

흘낏 쳐다보고는 스위치를 직접 눌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조손이 손을 잡고 다정하게 슈퍼로 향했습니다.

예전 한 때는 준모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이면도로에서 손을 잡지 않으려고 하여

조손간에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잘 이해하고 차가 다니는 길에서는 스스로 손을 잡는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를 지날 때는 들고 있던 과자를 나에게 맡기고 놀고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미끄럼틀과 여러 가지 놀이시설을 바꾸어 타고 놀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경사로를 줄 타고 오르기, 철봉에 매달려 오르기 등 또래아이들이 하기 어려운 동작도 잘 하였습니다.

보고 있는 할애비는 마음이 쓰여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안전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야 집으로 향했습니다.

놀이터를 나서며 준모가 혼잣말처럼 ‘놀이터 괜찮은데...’하며 다 큰아이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준모집 앞 놀이터보다 놀이시설이 많지?’하니 ‘예’하며 상냥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타고는 막대사탕 2개를 꺼내들고 하나의 포장껍질을 직접 벗겨

콜라 맛 사탕이라며 할애비에게 먹으라며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물어서 먹으라며 먹는 방법까지 설명해 주었답니다.

준모가 탄 차가 떠난 후 집으로 올라와 그 사탕을 들고 식탁에 앉아 이생각저생각을 하며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먹으니 입에는 콜라 맛이 번지고

눈앞에는 준모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가슴엔 손자의 따뜻한 정이 잔잔히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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