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정원의 봄과 초여름
(2022.6)
하늘정원의 봄은 긴 기다림 끝에 오지만 떠날 때는 가고 난 후에야 알게 된다.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까닭이리라. 긴 겨울을 함께 보낸 꽃들이 피어날 때마다 느끼는 마음을 모아 계절일기에 남겨 놓는다.
보라색 ‘매발톱꽃’이 피고나자 동백꽃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유난히 많이 맺힌 꽃망울이 피지도 못한 채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차례차례 붉은 꽃을 활짝 피워 기쁨을 주었다. 다양한 철쭉꽃들이 뒤따라 피어났다. 종류마다 독특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냥 철쭉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베란다 꽃밭에 하얀 은방울꽃이 송이송이 피어나고, 봄이 한층 무르익어 갔다.
‘샤스타 데이지’가 무리지어 피어 바람결에 살랑대는 모습이 정겹다. ‘디기탈리스’와 ‘섬초롱꽃’이 서로 앞을 다투듯 피었다. 바탕이 흰색이고 종처럼 생긴 꽃모양은 유사하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디기탈리스’는 외래종으로 꽃송이가 고개를 든 점박이의 세련된 자태라면, ‘섬초롱꽃’은 수줍어 고개를 숙인 듯 순박한 모습이다.
라일락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갈 즈음 ‘끈끈이 대나물’, 불두화, 병꽃, 기린초, 백화등, 부른펠지어 자스민, 엔젤 트럼펫, 단정화, 사랑초, 금계화, 사계패랭이, 바위취, 안개꽃이 피어났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백화등과 자스민의 향긋한 꽃내음에 옛 생각이 절로 났다. 봄이 깊어가자 붉은 장미꽃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울타리를 가득 채웠다. 가만히 부는 바람에도 꽃물결이 일렁일 때면 행복이 덩굴 채 굴러오는 기분이 들었다.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다 문득 창밖을 내다봤는데 창틈사이 새싹이 자라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창틀 콘크리트 틈새에 뿌리를 내린 생명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긴 가뭄 속에서도 조금씩 자라나더니 어느 날 기어코 꽃망울을 터뜨렸다. 신기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꽃은 하늘정원에도 많이 핀 ‘섬초롱꽃’이었다. 창틈 한쪽엔 파란 측백나무의 어린 싹도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진기한 일이 일어나다니... 집안에 경사가 있으려나 보다.
6월 초에 접어드니 장미꽃잎은 무심코 부는 바람에 모두 흩날려 버리고 초여름의 더위가 찾아왔다. 빨간 접시꽃이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봉선화와 조팝나무, 백년초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여름은 꽃도 사람도 힘든 시기다. 하지만 성숙의 계절이기도 하다. 주말과 아침, 저녁이면 하늘정원에 올라 꽃들을 돌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무념의 수양 시간을 가지리라...
(하늘정원의 봄)
(창틈에 핀 꽃)
(늦봄, 초여름)
'하늘정원 > 2022년 하늘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정원에 핀 가을꽃과 월동준비 (0) | 2022.12.30 |
---|---|
하늘정원의 여름 (0) | 2022.10.03 |
실내외 새봄맞이 (0) | 2022.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