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조손이 함께한 여름휴가(2)

돌샘 2013. 8. 8. 22:30

조손이 함께한 여름휴가(2)

* 둘째 날

(2013.7.30)

오늘도 외부출입문 벨을 누르고 올라가니 할머니가 준모를 안고 현관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기에

준모에게 안기라고 두 팔을 내밀었지만 미소로 맞이해 줄 뿐 어제와 같이 안기지는 않고

현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사표현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할애비에게 얼른 안기어 올 터인데 무슨 영문인지 아리송했지만 일단 준모의 의사에 따라 현관을 들어섰습니다.

거실에서 뒤따라 들어오는 준모에게 두 팔을 내밀었더니 이제야 안기어왔습니다.

할머니에게 준모가 보인 행동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아도 해석이 불가한 모양입니다.

식탁에 앉아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준모가 다가와 할애비 손을 잡고 현관 앞으로 끌고 가서는 문을 가리킵니다.

할애비와 외출하자는 뜻이겠지요. 외출하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했더니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가지고 나와 할머니 앞에 놓았습니다. 옷은 할머니가 갈아입혀준다는 것을 잘 아는 행동이었지요.

 

어제 오후에는 유모차에 태워 외출했다가 준모가 유모차에서 내려 직접 밀려고 하는 바람에 안아서

앞쪽으로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구부리는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느라 혼이 났기에 오늘은 자동차에 태워 외출을 했습니다.

공원에는 아무도 나와 있는 사람이 없어 숲길을 향하니 준모가 입구에서 내려 먼저 앞서가고 나는 자동차를 밀면서 뒤따라갔습니다.

숲속에는 운동기구가 몇 종류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철재 회전 틀을 돌리며 팔운동을 하고 있으니

준모가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가 자리가 비니까 다가가서 본인이 직접 이리저리 돌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어떤 아주머니가 회전판 위에 서서 허리 비틀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준모도 옆에 있는 다른 회전판에 올라서서 따라하려고 했습니다.

준모가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으나 미치지 않아 할애비가 양손으로 허리를 잡아주어 좌우로 회전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운동을 끝내고는 준모가 직접 자동차를 밀고 숲길을 걸어가다가 비탈길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속도를 내어 앞쪽으로 힘차게 뛰어가면서 신이 나는지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할애비는 갑작스런 행동에 준모가 넘어질까 봐 놀라서 서둘러 자동차 앞쪽을 살짝 잡아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그랬더니 준모가 할애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당기며 자동차를 잡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준모가 비탈길에서 속도감을 즐기려 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직접 자동차의 방향을 조절하며

언덕길을 밀고 올라가서는 회전을 시켜 아래쪽을 향해 뛰어내려오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아마 전에도 이런 놀이를 해본 듯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에 할애비는 혹시 넘어질까 봐 조바심을 내면서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이윽고 집 쪽으로 향하다가

아쉬움이 남는지 돌아서 다시 숲길을 한 바퀴 더 순회하고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거실에서 공놀이, 두더지 잡기놀이 등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조금 지나자 준모가 또 외출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준모에게 ‘준모야 지금 날씨가 더우니 밖에는 나중에 나가고 목욕탕에서 물놀이 하지.’하고 말하니

말귀를 알아들은 듯 화장실 문을 스스로 열었고 옷을 벗겨주니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욕조에 들어갔습니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채워주니 장난감을 물에 띄워놓고 잘 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할애비가 곁에 있다가 물벼락을 맞은 탓에 오늘은 수영복을 가져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욕조 밖에 앉아서 물장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준모가 장난감을 만지거나 수도꼭지에 부착된 여러 가지 조절기를 돌리거나 당기고 눌리면서 놀다가

서서히 장난기가 발동하는지 옆에 있던 할애비에게 물을 뿌렸습니다.

할애비도 손으로 욕탕의 물을 준모에게 뿌리자 까르르 웃기 시작하더니 손이나 장난감으로 물 뿌리기를 몇 번 반복한 후에는

샤워기를 들어서 나를 겨냥하는 바람에 물세례를 받았지요. 할애비도 샤워기를 들고 준모 쪽으로 물을 뿌리니

준모의 깔깔대며 웃는 소리와 할애비의 웃음소리가 겹쳐 화장실 안은 웃음소리로 떠들썩했습니다.

이웃집 화장실에서 누가 들었다면 저 집 화장실에서는 무엇을 하기에 어린아이가 저렇게 자지러지게 웃고

어른까지도 저렇게 웃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겠지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으며 놀다가 준모가 졸리는지 할애비에게 안기려고 두 손을 뻗어왔습니다.

할머니에게 준모 몸을 닦아주도록 하고 나도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으니 물놀이 덕분에 제법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원한 상태에서 조손이 과일을 먹고 나서 준모는 잠이 올 것 같은데도 자지 않고 조금 놀더니

또 현관문을 가리키며 외출하자고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준모야! 이제 낮잠을 자고 나중에 나가야지.’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할애비가 준모와 놀아주려고 작정을 하고 왔으니

‘잠깐 나갔다가 오겠다.’하고 준모를 자동차에 태워 집 앞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한낮이라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고 준모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밀어주는 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머리가 뒤쪽으로 젖혀지는 것을 보니 졸고 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아파트입구를 들어서니 준모가 자동차에 앉은 채 고개를 뒤로 돌려 안아 달라고 양팔을 할애비에게 쭉 뻗었습니다.

한쪽 팔로는 준모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자동차를 밀어 엘리베이터를 타니

준모가 금방 할애비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현관밖에 나와 기다리던 할머니에게 준모를 안긴 후 자동차를 제자리에 놓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준모가 잠을 자니 집안이 조용한 적막감에 빠져들었습니다.

 

할애비가 아파트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들어오니 준모가 일어나있었습니다.

준모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귀여운 행동을 할 때는 지켜보지만 말고

관여하여 같이 놀아주거나 손뼉도 쳐주어야 기분 좋게 잘 놉니다.

잘 놀다가 불현듯 준모가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히고 현관문을 나서려 하는데 준모가 거실 창가로 가서 손가락으로 밖의 무엇인가를 가리켰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공원에 아이들 두세 명이 보호자들과 같이 나와 있었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것 같아

우산을 준비해 손에 쥐고는 준모를 자동차에 태워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파트를 나서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져도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여 그냥 자동차를 밀고 공원으로 향하니

준모가 몸을 뒤로 돌려 내가 잡고 있는 우산을 만지며 ‘어~어~’하고 소리를 계속 내었습니다.

비가 오니 우산을 쓰고 가야 한다고 할애비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준모가 외출하기 직전에 손가락으로 창밖의 무엇을 가리킨 것이 ‘비가 오니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할애비가 정말 대단한 손자를 둔 것 같습니다.

오른손으로는 자동차를 밀고 왼손으로 우산을 펼쳐 씌워주니 준모는 굳이 자기 손으로 우산을 잡겠다고 하였습니다.

준모가 아직 우산을 혼자 힘으로 바로 잡을 수 없을 것 같았으나 본인 뜻이 그러하니

어떻게 하나 한번보자는 심정으로 두 손으로 꼭 잡도록 해주니 손과 팔에 힘을 주어 제법 잘 잡고 있었습니다.

공원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바람이 휙 불어오니 준모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손을 놓치고 나니

우산이 바람에 데굴데굴 굴러갔고 그 모양을 보고 준모는 까르르하고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내가 달려가서 우산을 잡아오니 준모가 차에서 내려 직접 잡겠다고 손을 내밀어서 조심스럽게 잡도록 해주었더니

이제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우산이 굴러가도록 던지기를 반복하며 좋아하였습니다.

혹시나 우산살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우산을 잡도록 하였으니 준모는 탈이 없었으나

우산살이 한 군데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준모는 공원을 이리저리 뛰어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거실에서 조손이 함께 놀고 있으니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었습니다.

즐겁게 놀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며 윗도리를 걸쳐 입었더니 준모가 할애비에게로 다가와 윗도리를 자꾸 아래로 잡아당겼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러나 하고 생각했지만 준모가 할애비가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느낌이 들어 윗옷을 벗었더니 정말 가만히 있었습니다.

할애비가 집에 돌아갈 때 잘못하면 준모가 울 것 같아 할머니가 준모를 안고 아파트 입구까지 같이 내려왔다가 올라가도록 하였지요.

자동차에 타 시동을 걸고 창문을 열어 준모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니

준모가 기분이 언짢아 표정이 시무룩하였지만 울지는 않고 할애비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준모야! 잘 있거라... 손을 흔드는 할애비 마음도 서운하단다.

 

집에 돌아와 어둠이 내린 거실에 혼자 앉아있으니 잠깐 울적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난 이틀간 준모와 함께 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곰곰히 생각하니 오랜만에 즐거움을 만끽하고 보람을 느낀 여름휴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손이 목욕탕에서 즐긴 물놀이는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준모가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오면 할애비와 옥상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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