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조손이 함께한 여름휴가(1)

돌샘 2013. 8. 8. 21:34

조손이 함께한 여름휴가(1) 

(2013.7.29~7.30)

올 여름 휴가기간에는 여행을 다녀와서 3일 정도는 준모(俊模)와 함께할 요량으로

회사눈치가 조금 보였지만 눈 질끈 감고 휴가일정을 넉넉하게 신청하였습니다.

마지막 3일째는 새아기가 휴가를 얻었다고 해서 준모와는 2일 동안을 같이 하게 되었지만

조손이 모처럼 장시간을 함께한 여름휴가는 흐뭇하고 보람된 나날이었습니다.

 

* 첫째 날

여독이 아직 덜 풀린 탓에 오전 느지막하게 집을 출발하여 아파트에 올라가니 할머니가 준모를 안고

현관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기에 ‘준모야!’하고 부르며 두 팔을 내밀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안기지는 않고

현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사표현을 하였습니다.

아침을 먹자마자 준모가 외출을 하자고 졸라서 할머니와 벌써 외출을 한번하고 들어온 모양입니다.

식탁에 앉아있으니 이윽고 준모가 할애비에게 다가와서는 손을 잡아끌기에 따라가니 현관문을 가리켰습니다.

외출을 하자는 뜻이겠지요.

외출복으로 갈아입히고 신발을 신기니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현관을 나서며 집에 남아있는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현관 밖에 세워두었던 빨간 자동차를 끌어내니 스스로 올라타서는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음악이 나오는 버턴도 눌리고 신이 났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오전이지만 햇볕이 꽤 강합니다.

공원과 매일상가로 가는 갈림길에서 ‘준모야! 어디로 갈까?’ 했더니 매일상가 쪽을 가리켰습니다.

일단 공원을 한번 둘러보니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고  매일상가 앞은 땡볕이라

그 곳을 지나 가로수 그늘이 진 거목상가 쪽으로 향했습니다.

준모가 차에서 내려 본인이 차를 밀고 가려고해서 맡겨보았더니 제법 방향조절을 잘하며 앞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발이 불편한지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만지기에 내 무릎에 앉히고 신을 다시 신겨주었는데

크기가 작아 쉽게 신기지 않았고 두 사람의 체온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지 얼굴과 몸에서 땀이 연신 솟아났습니다.

준모가 자동차를 밀고 방향이 벗어나면 할애비가 바로잡아주면서 아파트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지하철 입구 부근 길가에서 채소를 다듬어 파는 노점상 할머니가 웃으면서 준모에게 ‘할아버지와 산책 나왔니? 아이구 예쁘다.

심심한데 이 할머니와 놀자’고 하니 준모가 그 할머니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 할머니가 귀여워하며 준모에게 ‘삶은 옥수수 하나 줄까?’ 하기에 아직 옥수수는 먹지 못한다며 고마움을 표하고

다시 아파트를 향해 조손이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할머니가 목욕탕에 미지근한 물을 조금 채워 준모가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할애비가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물위에는 장난감을 띄워놓고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조금 흘러나와 물소리가 졸졸 나도록 해놓았습니다.

장난감을 이것저것 만지며 놀다가는 수도꼭지 조절기를 이리저리 돌리고 만져 물이 많이 나오게도 하고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게도 해보고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한참을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난감으로 물을 떠서 곁에서 지켜보던 할애비에게 뿌렸습니다.

할애비와 함께 놀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입니다. 할애비도 손으로 목욕탕속의 물을 준모에게 뿌리니

깔깔대며 큰소리로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어 할애비를 겨냥하는 바람에 바지가 제법 젖어 나중에 선풍기로 한참을 말렸습니다.

할애비도 웃으며 샤워기를 잡고 준모에게 물을 뿌리니 ‘히히히’ 웃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몸을 피하는 등 화장실 안은 웃음과 소란이 넘쳐났습니다.

조손이 물장난을 족히 한 시간 정도는 한 후에야 준모가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물놀이를 어지간히 한 모양입니다. 안고 나와서 할머니가 몸을 닦아주고 옷을 입히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준모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자고 있는 준모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준모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준모가 잠시를 가만히 있지 않고 설쳐댈 때는 따라다니며 보살피는 일이 쉽지 않은데 잠을 자고 있으면

당장 심심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준모가 활동적이라 친밀감도 더 생기고 정도 더 깊게 들어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준모가 몸을 뒤척이고 눈을 살짝 뜰 때면 조용히 다독거려주면 다시 잠이 들어 2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살며시 웃으며 일어났습니다.

준모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할애비와 공놀이도 하고 장난감 오르간도 치며 놀다가 이윽고 외출하자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할머니와 상의를 하여 산책도 하고 준모에게 사줄 적당한 신발이 있는지도 알아볼 겸 킴스클럽에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강한 햇빛을 생각해서 준모에게 썬그라스를 씌워주니 불편한지 곧 벗어버려 모자만 씌우고 유모차에 태운 후

손잡이가 달린 장난감 경찰차를 아래에 싣고 출발을 했습니다.

매일상가 부근에 이르러서는 준모가 유모차에서 내려 경찰차를 밀면서 앞서갔는데

땀이 나니 모자도 벗어버렸고 가로수 그늘 사이사이에는 제법 따가운 햇볕이 내려 쬐었습니다.

준모를 유모차에 다시 태워 길을 재촉하였으나 더위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는데

킴스클럽을 들어서자 냉방이 잘되어 모두들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식품코너를 지날 때는 여기저기 시식코너가 있었는데 준모가 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먹고 싶다는 의사표현이겠지요.

할머니가 부두코너에서 준모에게 두부 한 조각을 건네주니 얼른 먹고는 또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그냥 지나치려고 하니 준모가 유모차에서 몸을 뒤로 돌리고 반쯤 일어나 ‘어~어~’하면서 더 달라고 독촉을 하였습니다.

준모가 두부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마침내 신발코너에 들어서서 진열장을 둘러보니 준모에게는 너무 큰 사이즈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먼 곳까지 왔는데 한번 신기나보자는 의미에서 파란색과 초록색 신발을 신기니 가만히 발을 내밀고 있었는데

분홍색 신발을 신겨 보려니 발을 뻗대며 신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분홍색 신발은 싫은 모양입니다.

준모가 색감을 가지고 있고 호, 불호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할머니는 바로 들어가고 나는 준모와 공원에서 조금 더 놀다가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공원에는 연세 많은 할머니들만 몇 사람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준모는 공원에 도착하자 유모차에서 내려서 비둘기가 나뭇가지에 날아오르는 것을 올려다보며 팔을 휘젓기도 하고

애완견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유모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유모차 바퀴를 잠시 만지더니 손을 위로 뻗어 유모차 손잡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잡히지 않으니

할애비에게 양팔을 내밀며 안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무심코 준모가 다리가 아프니 할애비에게 안겨서 집으로 가려고 하나 생각하고 한쪽 팔로는 준모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며 집으로 향했더니 준모가 유모차 쪽으로 몸을 비틀었습니다.

준모가 유모차를 타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자리에 앉히려고 하였으나 다리에 힘을 주어 뻗대며 유모차를 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이러나 하고 바닥에 내려주니 준모가 까치발을 하여 유모차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준모가 조금 전에 했던 몇 가지 행동이 연결되어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준모가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직접 밀고 싶은데 손이 닿지 않으니 할애비가 안아서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게 해주면

본인이 밀고 가겠다는 의사표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할애비가 준모 뒤에 서서 준모 배 아래쪽을 양팔로 감싸 안아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꾸부려

준모 손이 손잡이에 닿도록 해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자세를 취해주었더니 준모가 손잡이를 잡고 유모차를 밀면서 웃으며 좋아했습니다.

준모가 양손에 힘을 번갈아 주면서 유모차를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제법 잘 밀고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유모차가 보도를 벗어나 잔디밭 쪽으로 들어가면 내가 뒷걸음을 쳐서

유모차가 밖으로 끌려나오도록 하니 깔깔대고 웃으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할애비가 허리를 앞으로 숙여 엉거주춤한 자세로 준모를 안고 있으니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파 오랫동안 안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를 한번 펴고 힘을 다시 모아 안아주려고 준모를 바닥에 내려놓으니

준모는 할애비가 더 안 해주려고 그러는 줄 알고 큰소리를 지르며 찡찡거렸지요.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온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안경에도 땀이 묻어 앞이 안보일 정도가 되었지요.

땀을 닦으려고 준모를 내려놓으니 처음에는 빨리 다시 해달라고 떼를 쓰다가

손수건으로 안경도 닦고 얼굴의 땀을 닦으니 할애비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기다려주었습니다.

한두 번을 더 반복하고 나니 준모 얼굴에도 땀이 송알송알 맺히었습니다.

준모를 무릎에 앉혀 땀을 닦아주고 나도 땀을 닦고 나니 본인도 힘들고 할애비도 안쓰럽게 보였던지 순순히 유모차에 다시 탔습니다.

 

집에 들어와 할머니가 준모 얼굴을 씻겨주도록 하고 나도 땀을 식히고 나니 시간도 어느 듯 6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준모가 식탁에 앉아 할머니가 주는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할애비가 준모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작별을 고하고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러면 준모가 또 따라 나가려고 하거나

울 수도 있기에 할머니에게 살짝 이야기하고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손이 함께한 여름휴가 첫날은 물놀이도 하고 공원과 킴스클럽에 외출도 하고 다소 복잡한 의사소통도 잘 이루어내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벌써 다음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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