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행차
(2013.6.30)
오늘은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4도로 올 들어 가장 덥다는 일기예보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조손이 장소를 옮겨가면서 여러 곳에서 모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준모가 만나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계속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여 더위에도 불구하고 보람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훗날 준모가 사진을 보면서 본인의 행동을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장소별로 일어났던 일들과 느낀 점을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 점심식사를 하면서
아범, 새아기, 준모 그리고 우리내외가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하여
시간에 맞추어 약속장소로 나가니 준모가 먼저와 앉아 있다가 식당을 들어서는
조부모를 보고는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고 가까이 다가서니 할애비에게 양팔을 쭉 내밀어 안기려고 하였습니다.
할애비가 안아주니 준모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몸짓을 해 밖으로 나가니 건너편에 주차된 자동차를 가리켜
그 쪽으로 갔더니 자기가 타고 온 차를 아는 듯 고개를 숙여 차 안쪽을 들여다보고는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바깥은 후덥지근하여 실내로 들어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안고 다니니
준모가 미소를 지으며 아줌마들이 앉아있는 한 좌석을 향하여 ‘빠이~빠이~’ 하듯이 손을 흔드니
아줌마들도 웃으며 준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준모가 에어컨 있는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내기에 그 곳으로 안고 가니 버턴을 누르려고 하였습니다.
혹시 잘못 만져 식당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금연’이라 쓰인 스티커를 누르라고 했더니
손을 저으며 아니라 하였고 에어컨 가동상태를 나타내는 표시등을 누르라고 해도 손을 젓고는
바로 아래쪽에 있는 조그만 버턴을 찾아 누르고는 당당하게 할애비도 눌러보라고 내손을 잡아 버턴 있는 위치로 끌고 갔습니다.
준모가 딴 곳을 누르도록 잘못 가르쳐준 할애비에게 버턴을 제대로 찾아 누르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할애비가 얼렁뚱땅 넘기려 들다가 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준모 앞에서는 항상 언행을 신중히 해야 되겠습니다).
준모가 식당 벽에 걸려있는 예약손님 기록용 작은 칠판을 발견하고는 그 곳을 가리키기에 그곳으로 다가서니
수성 펜과 지우개를 번갈아 만지고는 펜으로 칠판을 두드려대기에 펜 뚜껑을 열어 글씨가 써지는 것을 보여주었더니
자기 손으로 펜을 잡고는 신기한 듯 열심히 그림을 그려대었습니다(이제 집에서도 종이와 색연필을 주면
준모가 열심히 그림을 그릴 것 같습니다).
준모를 교대로 보면서 식사를 마치고는 식당을 나와 준모부터 차에 태우고 우리내외도 같은 차에 오르니
준모가 기분이 한층 더 좋아져 박수를 치며 큰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그 동안 준모가 차에 탈 때면 주로 조부모와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는데 오늘은 같이 차에 타니 좋은 모양입니다.
조부모도 준모 따라 박수를 치고 웃으며 좋아했지요...
* 할아버지 집에서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여 조손이 먼저 내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준모가 차를 향해 여러 번 손을 흔들어 주고는 광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광장을 이리저리 다녀도 재미나는 놀거리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가까이 있는 다른 동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준모가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안아서 엘리베이터 버턴을 직접 누르게 하고
아파트에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더니 주차장으로 갔던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고 거실로 데리고 들어오니 준모가 가만히 서서 이상하다는 듯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이윽고 계단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이층으로 올라가 옥상정원으로 나가는 문을 열려고 하였습니다.
문을 열어주니 신발을 신겨줄 겨를도 없이 맨발로 정원으로 나가서는 좌우로 고개를 돌려 꽃들을 쳐다보다가
화분 위에 놓여있는 모종삽을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모종삽을 잡고
화분의 흙을 파서 옹기그릇에 담긴 물속에 넣는 장난을 반복했습니다.
준모가 현관에 들어서서 잠깐 두리번거린 것은 처음에 자기 집인 것으로 여겼다가 집구조가 다르니까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하고는 올라가면 옥상정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 같습니다.
한 달 전쯤 우리 집에 왔을 때 모종삽으로 화분의 흙을 파서 물이 담긴 옹기그릇에 넣는 놀이를 하였는데
오늘도 똑 같은 순서와 방법으로 장난을 하였습니다.
화분과 옹기그릇의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도 망설임 없이 화분의 흙을 파서 삽에 담은 채로 몇 걸음 걸어가서
물이 있는 옹기그릇에 넣는 것을 보면 옹기그릇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거실에 내려와서는 과일상 앞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의젓하게 앉아서는 체리를 옆에 있는 다른 그릇에 모두 옮겨 담기도하고
'준모야! 아~'하고 입을 벌리니 할애비 입에도 체리를 하나 넣어주었습니다.
다시 옥상정원에 올라가서는 맨발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난 다음에 모종삽으로 흙을 파서 옹기그릇에 담는 놀이를 반복했습니다.
어지간히 흙장난을 한 후에 할애비가 물뿌리개에 담겨있는 물을 대야에 부어 손을 씻겨주었더니
준모가 대야에 있던 물을 바닥에 부어버리고 자기가 물뿌리개의 물을 다시 대야에 부어 한참동안 물장난을 하였습니다.
손발을 씻기고 거실에 데려다 놓으니 준모는 거실과 안방을 들락거리며 리모컨으로 TV를 켜는 장난을 하고 놀았습니다.
안방 리모컨은 버턴이 많지 않으니 이것저것 만져 TV를 켰다가 끄기도 하였는데 거실 리모컨은 버턴도 많고
방향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켜지지 않으니 TV에 부착된 스위치를 직접 눌러 TV서 켰습니다.
할애비는 준모가 TV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리모컨 누르는 것을 바라만 보았는데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끄는 것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한다면 굳이 만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준모가 다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도 리모컨으로 TV를 켜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할애비가 전원 버턴의 위치와 리모컨의 방향을 제대로 하여 TV를 켜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 예술의 전당
준모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가족이 호위를 하면서 예술의 전당으로 야외산책을 나갔습니다.
준모가 유모차를 타고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유모차에서 내리려고 하여 만류를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간혹 차가 다녀 안전을 위해 손을 잡아주려고 해도 뿌리치고 본인 마음대로 걷고 싶은 모양입니다.
어른이 천천히 걸어도 15분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교차로 건널 때만 할애비에게 안기고
그 외는 땀을 흘리면서도 스스로 걸어서 예술의 전당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무더위에 모두들 조금은 힘든 표정입니다. 그러나 준모는 예외였습니다.
입구는 지하라서 조금 시원할 것으로 예상되어 할머니, 아빠, 엄마는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땀을 식히도록 하고
준모는 할애비가 따라다니며 보살폈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공연장 매표소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자기도 줄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고
공연장 입구 에스컬레이터 타는 곳까지 걸어가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하고(할애비가 만류를 하니 순순히 응하였습니다.
준모 스스로도 위험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니
어른들이 귀엽다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면 준모도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현금지급기 앞을 지나갈 때는 그곳을 가리키며 안아 올려달라고 몸짓을 하여 올려주면
여기저기 불빛이 있는 곳을 눌려보고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깔깔대며 웃기도 하는 등 준모에게는 모든 것들이 신기해 보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입니다.
복도 한쪽 벽에는 소형 그림들을 걸어놓고 전시회를 하는 모양인데 벽 가까이에 철재 봉을 세우고
봉 사이에는 줄을 낮게 늘어뜨려 ‘안으로 들어가지 마세요’하는 쪽지를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준모는 봉과 줄을 만지고 놀다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놀고 싶은 모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주의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정도의 사람에게만 해당될 수도 있으나
손자가 혹시나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될까봐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준모를 만류하니
그 이유를 모르는 준모는 기어이 들어가려고 힘을 주어 뻗대며 떼를 썼습니다.
안쪽에 들어간 준모를 밖으로 안아 올리면서 ‘안에 들어가면 안돼요.’하고는 좀 떨어진 곳에 내려주었더니
이번에는 무엇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여성용 화장실로 들어가려 해서 얼른 안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할머니도 합류하여 전시장 쪽으로 다시 왔을 때는 봉과 줄을 만지고 놀 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준모는 하고 싶은 것과 호기심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나
어른들이 못하게 하지만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만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층을 나와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부모와 같이 내려오다가
덥고 힘든지 쪼그리고 앉아있으니 준모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앞으로 다가가서 그 애와 똑같은 자세로
마주보며 쪼그리니 애 부모도 웃으며 귀여워하였는데 그 부모가 들고 있던 비닐공을 달라고 하여 몇 번이나 던져보았습니다.
광장에 도착해서는 아범이 비눗방울을 불어서 날리니 준모가 비눗방울을 잡으러 이리저리 다니다가
나중에는 본인이 비눗방울을 직접 불어보려고 하였습니다.
비눗방울을 부는데 성공을 하여 어른들이 박수를 쳐주면 본인도 웃으며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준모가 하는 행동이 귀여우니 주위에 앉아 있던 여러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미소를 지었습니다(여느 아이들 같으면 비눗방울을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잡으려는 행동 정도를 보일 터인데 준모는 호기심이 생기면 본인이 직접 해보려고 합니다. : 동영상 첨부).
광장 잔디밭에서 놀다가는 주변에 있던 남매가 손에 빵을 들고 있으니 먹음직해 보였던지
누나인 큰 아이에게 다가가 빵을 빼앗으려고 해서 웃으면서 만류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오는 경사로는 경사가 급하고 위험할 것 같아 준모의 손을 잡아주려고 하니
기어코 손을 뿌리치고 상당히 긴 경사로를 혼자 힘으로 안전하게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도중에 야외카페가 있었는데 음악이 흘러나오니 준모가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들기도 하고
한 바퀴 빙그르 돌기도 하며 춤을 추는 행동을 하니 이를 본 종업원과 손님들도 즐거운 듯 웃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여 조금 놀다가는 준모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짐을 챙겨 주차장에 내려갔습니다.
준모를 차에 태우고 ‘준모야! 빠이~빠이~’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면 준모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준모야! 안녕’하고 고개를 숙이면 준모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준모가 창문 밖으로 웃는 모습을 조부모에게 보이며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준모가 오늘은 유난히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준모의 모습을 지켜본 할애비의 마음도 한없이 흐뭇했습니다.
오늘은 조손이 재미있게 놀면서 6월말의 기록적인 한낮 무더위를 날려버린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할애비가 즐거워하는 준모 도련님의 행차를 안전하게 수행하였으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