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하늘정원 물놀이

돌샘 2013. 8. 8. 23:09

하늘정원 물놀이

(2013.8.3)

오늘은 토요일. 새아기는 출근을 해야 하고 아범은 집에서 회사업무를 할 것이 있어 준모를 조부모가 돌봐주기로 하였습니다.

준모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집안 대청소를 하고 샤워를 한 후에 하늘정원에는 큰 대야 2개, 손대야,

물뿌리개, 앉은뱅이 의자, 수도꼭지에 연결한 물분사기를 깨끗이 씻어 두었습니다.

이윽고 벨이 울려 아파트 출입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준모는 잠이 들어 아범에게 안긴 채 내렸습니다.

거실에 보료를 깔고 준모를 눕혀도 깨지 않는 것을 보니 깊은 잠이 들었나 봅니다.

점심을 챙겨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고 있는 준모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준모가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뜨면서 눈앞에 있는 조부모 얼굴을 보고는 싱긋이 웃으며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가 끄기를 반복하고

전화기 스피커폰을 눌러 ‘삐~’ 소리가 나게 하고는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어도 보았습니다.

큰 비닐 공을 가지고 놀다가 할애비가 공을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던져 경사를 따라 공이 저절로 굴러 내려오게 하였더니

준모가 깔깔대고 웃으며 신이 났습니다. 준모가 잠에서 깨어 활동을 하니 조용하던 집안에 온통 활기가 넘쳐났습니다.

한참을 같이 놀다가 준모가 느닷없이 아범이 올 때 가지고 와 현관에 놓아둔 자동차에 말없이 올라탔습니다.

준모가 외출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손가락으로 현관을 가리키거나 손을 잡고 현관으로 끌고 가곤하였는데 그 때는 자동차가 현관 밖에 있었고

오늘은 현관 안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완곡하게 본인 의사를 나타내는 방법일까요?

할애비가 한참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도록 준모가 색다른 의사표현을 하였습니다.

 

할애비가 현관문을 열고 준모가 탄 자동차를 밀고 밖으로 나가려하니

준모가 차에서 내려서는 막대달린 경찰차도 들고 나가려하였습니다.

두 가지 차를 한꺼번에 가지고 놀 수는 없어 경찰차는 현관에 두고 가자고 하였으나

준모의 뜻이 확고해 만류를 할 수가 없었지요.

준모가 앞서 경찰차를 밀면서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 뒤를 힐끗 돌아다보았습니다.

자동차를 할애비가 가지고 내리는지 확인하려는 것이겠지요.

아파트 중앙광장은 한낮이라 그런지 한적하기만 하였습니다.

준모가 경찰차를 밀면서 앞서가다가 그 자리에 세워두고 할애비에게로 돌아와 자동차를 받아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여기저기를 밀고 다니기에 나는 그늘진 곳에서 놀도록 유도만 하였습니다.

어린이놀이터에도 가보았으나 노는 아이가 아무도 없으니 재미가 없는지 조금 놀다가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준모가 2층 계단을 올라 하늘정원으로 나가려고 하기에 문을 열어주었더니

할애비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물을 담아놓은 큰 대야 등을 보고서는 당장 물장난을 하려고 덤벼들어

옷을 벗겨주고는 할애비는 반바지 차림으로 옆에 앉아서  지켜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물에 조심스럽게 손을 넣고 휘저으며 놀더니 물을 손으로 뿌려보기도 하고

급기야는 대야의 물을 바닥에 들어붓고는 발을 동동거려 첨병대기도 하였습니다.

물분사기로 빈 대야에 물을 다시 채워주니 그 광경을 지켜본 준모는 드디어 호기심이 발동하여

할애비에게 다가와 분사기를 받아 들고는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서 분사기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준모가 직접 물을 분사시켜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준모의 손가락 힘이 약하니 분사가 잘 안되어 할애비가 손가락을 위에 얹어 같이 눌러주어야 분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모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분사를 시키고 싶은지 자꾸 할애비의 손은 밀어내어 버립니다.

준모가 두 손으로 분사기를 잡고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동시에 누르게 하였더니 분사가 조금씩 되기 시작하였고

스위치 끝부분을 누르도록 가르쳐주었더니 입을 꽉 다물고 온몸의 힘을 집중하면서 제법 분사를 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할애비가 손으로 대야의 물을 준모 몸에 뿌렸더니 드디어 준모도 장난기가 발동하여 나를 향하여 분사기를 작동시켜

얼굴과 몸에 물이 쏟아졌지만 곧 중지를 시켜주었습니다. 할애비가 옷을 입고 있었으니 사정을 좀 보아준 듯합니다.

물놀이로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시니 준모가 할애비에게 팔을 내밀며 안겨왔습니다.

안고 실내로 들어와 할머니에게 준모 몸을 닦아주도록 하고 나도 젖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거실에 내려와 이런저런 놀이로 시간을 보내다가 준모가 물장난에 재미를 붙였는지 

다시 하늘정원으로 나가서는 분사기를 잡고 물을 이곳저곳으로 쏘아댔습니다.

이제는 할애비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조손이 아파트 옥상에서 본격적인 물놀이에 들어갔습니다.

준모가 물을 분사시키는 방법에 요령이 생겨 이제는 세찬 물줄기를 옥상 울타리 밖으로까지 날려 보냈습니다.

할애비에게도 온몸이 흠뻑 젖도록 물을 뿜어댔습니다.

할애비가 옷을 입고 있었을 때는 물을 잠깐만 쏘고 그쳤는데 수영복을 입고 있으니 많이 쏘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할애비도 분사기를 잡고 물줄기를 약하게 하여 준모 쪽으로 분사를 시키니 깔깔대고 웃으며 한바탕 떠들썩한 놀이판이 벌어졌습니다.

준모가 처음에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큰 대야의 물속에 들어가자 물을 흡수하여 무겁고 불편해지니

기저귀를 벗겨달라고 하여 이제 준모는 완전 알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면 조손이 도심 아파트 옥상에서 별짓 다한다고 구경거리가 되었겠지요.

제법 더운 날씨임에도 상대방에게 물을 뿌려대며 놀다보니 조금 한기가 느껴질 무렵이 되어서야

준모가 할애비에게 안겨와 두 번째 물놀이가 종료되었습니다.

나중에 준모가 다시 물놀이를 하자고 하늘정원을 내다보며 물이 담긴 대야를 가리켰으나

그때는 소나기가 오고 있어 ‘준모야 비가 올 때는 물놀이 못하는 거야. 다음에 비 안 올 때 할아버지와 물놀이 하자.’고 했더니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순순히 돌아섰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할머니가 준모에게 두부부침을 해주기 위해서 두부를 사러 슈퍼에 간다기에

준모를 자동차에 태워 세 사람이 함께 외출을 했습니다.

준모는 곧 자동차에서 내려 본인이 방향을 조절하면서 밀고 갔는데 정문을 나서자

후문 쪽으로 하향경사가 져있으니 빠른 속도로 밀면서 뛰어 내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차도 종종 다녀 주의를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곳이라

할애비가 바깥쪽에 서서 핸들을 같이 잡고 천천히 가도록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준모에게 차에 타라고 해도 타지 않고 밀고 가더니 아파트 인접도로를 벗어나 이면도로에 이르러

길이 더 좁아지니 순순히 차를 타고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며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슈퍼에 들어간 후에는 할애비가 준모 탄 차를 밀고 부근을 천천히 선회하면서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나오자 함께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후문부근에 이르러 길이 다시 넓어지자 그 때까지 차를 타고 가만히 앉아있었던 준모가 내려 차를 밀고 갔습니다.

조부모가 길이 좁아지고 차가 다녀 위험하다고 했던 이야기를 준모가 이해하고

그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을까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아파트 후문을 들어서자 차를 밀고가던 준모가 할머니가 슈퍼에서 산 물건을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받아 직접 차에 싣고는 봉지에 무엇이 들었는지 살짝 들쳐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효손(孝孫)입니다. 우리부부가 마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답니다.

이제 17개월 되는 준모의 머리와 가슴속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이렇게 의젓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장본 것을 들고 먼저 집에 들어가고 조손은 중앙광장에서 조금 더 놀다가 아파트 출입구를 들어섰습니다.

할애비가 전자카드를 감지기에 갖다 대니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것을 보고는 준모의 호기심이 또 발동하였습니다.

준모가 버턴을 누르는 방법은 알고 있었는데 전자카드로 문을 여는 방법은 신기하게 보였나봅니다.

준모의 요청으로 준모가 카드를 잡고 할애비가 안아 올려주면 카드를 감지기에 직접 갖다 대어 문을 여는 과정을

호기심이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 반복하느라 출입문을 들어갔다 나왔다 몇 번을 들락거린 후에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준비되어 식사를 같이 하는데 준모는 할머니가 준비한 부침개가 입맛에 드는지 손으로 자꾸 가리켰습니다.

할머니와 아범, 준모는 식사를 먼저 마쳐 거실에 있고 나는 조금 늦게까지 식탁에 앉아있었는데

할머니와 아빠는 준모가 해달라는 것을 잘 들어주지 앉는지

준모가 몇 번이나 할애비에게 와서 손을 잡고는 거실로 데리고 가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난주 휴가 때 이틀과 오늘 준모와 장시간 같이 놀다보니 조손간에 정도 더 들고 든든한 후원자로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준모는 할머니 등에 업혀 잠이 들었고 보료에 눕혀놓았는데 돌아갈 시간이 다가와 깨울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스스로 눈을 뜨고 살며시 웃으며 일어났습니다. 

짐을 챙기고 나서 준모는 할애비가 안았는데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가리키며 ‘준모야!’하고 웃으니

준모가 큰 소리로 너털웃음을 웃으며 답하였습니다.

준모는 차를 타고 조부모의 전송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사랑하는 ‘손자’의 탄생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생각과 행동을 서서히 바꾸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엄한 애비에서 무던한(?) 할애비로의 변신. 죄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