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자 눈길은 자연히 준모 쪽으로 향했고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이불을 바로 덮어주고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후에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 바라만 보아도 가슴 가득 행복합니다.
준모 할머니가 아침준비를 위해 나왔지만 준모가 일어날 때까지는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지요.
어제 마음껏 뛰노느라 피곤하고 늦게 잠들어 단잠에 빠져있는 모양입니다.
이윽고 몸이 꿈틀하고 머리가 움직이는 듯하여 ‘준모야! 잘 잤니?’했더니 ‘예’하며 대답하고 하품과 긴 기지개를 켰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어제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하고는 학용품을 진열한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준모야! 햇볕이 따가우니 상품(?) 진열을 장식장 있는 곳으로 옮기자.’고
제안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햇볕이 많이 들면 학용품 사러오는 손님도 없을 텐데’하고
이전을 유도했지만 준모의 주관과 고집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지금 장소가 햇볕이 드는 것 이외는 상품을 진열하고 장사놀이를 하기에 더 좋아 합리적으로 이전을 설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 학용품 사러오라고 독촉을 시작했지만 아침을 먹고 나서 하자는 말에는 쉽게 양보를 하였습니다.
고모와 할머니가 교대로 준모 가게에 학용품을 사러 갔는데 ‘사장님! 이거 얼마입니까?’하면
하나에 오백 원이나 천원 또는 만원으로 가격을 불렀습니다.
‘사장님 너무 비싼데요. 좀 깎아주세요.’하면 가격을 많이 깎아주었습니다.
‘결재하면 교환이 안 됩니다.’고 하거나 지불을 ‘돈으로 하시겠습니까?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묻는 등
실제 가게에서 보고 들은 그대로 흉내를 잘 내었습니다. 그리고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등 인사말은 쉽게 잘 배웠는데 물건 값의 계산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되겠습니다.
가게 놀이가 지루해질 무렵 바둑돌로 알까기 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바둑알을 튕길 때는 상당한 경험과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시합을 하면 결과가 뻔했습니다.
준모가 햄버그를 먹고 싶어 하여 점심때는 할머니와 고모 세 사람이 햄버그 가게에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놀이터에 그늘이 져 킥보드를 타며 놀다가 왔습니다.
오후에 가게 놀이를 다시 시작할 때 할머니와 고모는 잔돈이 없다며 신용카드로 물건을 샀습니다.
준모가 신용카드로 물건 값을 계산할 때 영수증이 발급되며 나는 기계음을 입으로 흉내 내었습니다.
영수증을 써달라고 하면 종이에 금액을 또박또박 직접 써서 주었습니다.
할애비는 만 원짜리를 가져와 현금으로 지불하자 준모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삼천 원어치 학용품을 사며 만 원을 주고 오천 원 지폐와 천 원 지폐 두 장을 거슬러 받을 때나,
이천 원어치 학용품을 사며 오천 원을 주고 천 원 지폐 세 장을 거슬러 받을 때 준모가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산수로는 이해를 하는데 실제로는 돈을 한 장 받고 여러 장 거슬러 주는 것이 손해되는 것으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가게 놀이를 할 때는 고액권을 받고 잔돈으로 여러 장을 거슬러 주고 놀이가 끝나면 고액권을 돌려주고 잔돈을 되찾아갔습니다.
할머니가 돈 계산방법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자 싫증을 내었습니다.
때에 맞게 차근차근한 교육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다시 바둑알까기 놀이를 시작했는데 손가락으로 튕기는 기존 방법으로는 승산이 없자
손가락 끝으로 바둑알을 끌어당겨 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변경된 방법으로 여러 번 시합을 한 결과, 실력이 대등해지고 바둑알을 준모에게 더 많이 주고 겨루는
기존 룰대로 경기를 하면 준모가 항상 이기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놀이방법을 조금 변경하여 본인의 약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재치가 놀랍습니다.
간식으로 국수를 먹겠다고 하여 할머니가 양념간장 국수와 물김치 국수를 요리해 주자 꽤 많이 먹었습니다.
하늘정원 수목에 물을 주니 준모도 나와 꽃모종 심기와 떨어진 꽃잎들을 쓸어 모았습니다.
그리고 호스를 끌어당겨 할애비에게 장난도 걸어왔습니다.
물을 주다가 이상하여 수도꼭지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끌어당긴 호스를 나에게 보여주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준모야! 집에 언제 갈거니?’하고 물으면 ‘안 갈 거야! 여기서 잘 거야.’하고 대답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재미있게 더 놀다가 저녁을 먹여 바래다주어야겠습니다.
조손과 고모가 놀이터로 나갔습니다. 준모는 킥보드를 타고 고모는 축구공을 들고 따라 나섰습니다.
고모는 조카가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니 약속도 취소했다고 합니다.
술래잡기와 공차기, 킥보드 타기... 동네가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웃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놀았습니다.
저녁 먹으러 집으로 갈 때는 고모 모자를 빼앗아 자기가 쓰는 장난도 쳤습니다.
깨끗이 씻기고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준모는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준모야! 저녁 먹자.’고 했더니 ‘예’하는 대답은 들려왔지만 기척이 없었습니다.
‘준모야! 저녁 안 먹을 거니? 할아버지 먼저 먹는다.’했더니 ‘여기서 먹으면 좋은데..,’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음식을 흘려서 안 된다. 식탁에서 먹어야지!’하자
‘할머니가 먹여주면 되잖아요.’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준모가 보던 TV 프로를 계속 보고 싶기도 하고 할머니가 밥을 먹여주던 옛 기억도 되살아 났나봅니다.
할머니도 싫지 않은 표정으로 밥과 반찬을 들고 준모에게 갔고, 준모도 살짝 웃었습니다.
어둡기 전에 짐을 챙겨들고 현관을 나서려고 하는데 준모가 ‘어~ 내 팽이 어디 갔지?’ 하였습니다.
뽑기로 샀다는 조그만 장난감인데 나도 눈여겨봤기에 무얼 말하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준모야! 잠깐 있어 봐. 내가 찾아볼게.’하고는 준모와 놀 때 입었던 옷을 만져보니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있었습니다.
준모가 예전부터 자기물건을 잘 챙겼지만 학용품 가게 사장(?)이 되고나서 더 잘 챙기는 것 같습니다.
집으로 가는 차를 타고는 곧 잠이 들었습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새아기와 지우가 나왔는데
지우가 킥보드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며 오빠를 찾는 듯했습니다.
준모도 곧 잠에서 깨어나 엄마와 동생을 보고 미소를 보냈습니다.
지우는 할머니에게도 안기고 할애비에게도 안겨 귀여움을 부리고 오빠를 만나 좋아했습니다.
(할애비의 고백)
사실 내가 자식들을 키울 때는 가정적으로 유학(儒學)의 잔재요소가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돈 계산에 밝은 것을 금기시하여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흘러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뀌었고 나 자신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주들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활할 것이 확실하니 돈에 대한 인식이나 계산 능력,
나아가 이재능력까지도 적시에 알맞게 배우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돈을 모으는 능력뿐만 아니라 좋은 곳에 잘 쓰는 인품도 같이 함양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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