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방문기(6)
(2019.5.17.)
지우가 엘리베이터 앞에 마중나간 나를 보곤 “어~ 할아버지! 오늘 회사에서 빨리 왔어요?”하며 놀라듯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할아버지 회사에서 야유회 갔단다.”하고 대답했지만 ‘야유회’의 뜻은 아직 모르겠지요. 거실에서 놀다가 하늘정원에 가보자며 올라가 꽃에 물을 주었습니다. 정원에는 넝쿨장미와 마가렛, 디기탈리스, 섬초롱꽃 등 많은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지우는 꽃을 쳐다보고는 코를 꽃에 갖다 대고 흥흥거리며 향기를 맡았습니다. 장미 향기를 맡을 때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마가렛에 코를 대고는 “아이~ 냄새!”하며 손을 코앞에 흔들었습니다. ‘예쁜 꽃인데 안 좋은 냄새가 날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직접 향기를 맡아보았습니다. 활짝 핀 꽃에 코를 갖다 대자 향긋한 냄새가 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쿰쿰한 냄새가 배어있는 듯했습니다. 다년생 초화로 몇 년 전부터 가꾸어왔지만 향기를 맡아볼 생각은 미처 못 했는데, 지우 덕분에 처음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내친김에 ‘디기탈리스’의 향기도 맡아보니 은은하고 상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지우가 조부모를 대동(?)하고 놀이터로 나갔습니다. “차에서 내려 엄마와 집으로 올 때 이전에 함께 놀았던 언니를 만나 놀이터에서 같이 놀자고 했는데 왜 안 나왔지?”하며 서운해 하였습니다. 처음 만난 동갑과 한 살 아래 남자아이들과 놀았지만 아는 언니와 놀 때보다 재미가 덜한 모양입니다. 언니와 약속했는데 놀이터에 나오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결혼식장에서 가져왔던 꽃을 들고 다시 하늘정원으로 올라가 꽃의 색깔과 모양을 서로 비교하며 놀았습니다.
조손이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할머니는 지우 식사를 거들기 위해 곁에 서있었습니다. 지우는 하얀 국물이 맛있다며 고개와 몸을 까닥까닥 흔들며 좋아했습니다. 지우가 식사를 하다가 불현듯 “할아버지~ 장수는 안 먹어요?”하고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언뜻 알아듣지 못하고 “지우야~ 뭐라꼬?”하고 되물었더니 큰 소리로 “장수요!”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무슨 말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장수?”했더니 “예!”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옆에 서있던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막걸리, ‘장수’를 말하나?”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형광등처럼 깜박거리며 할애비 머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3주 전에 지우와 저녁을 같이 먹으며 반주로 “장수”라는 상표의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지우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우가 “장수”라는 글자를 아는 것은 물론, 그것을 2~3주 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조부모가 얼굴을 마주보며 “와~”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장수는 안 먹어요?”하는 말이 잘 믿기지 않아 다음 날 소민이 100일 때 만나 “지우야! 장수가 뭐지?”하고 물었습니다. “음~ 우유처럼 하얗게 생긴 물!”이라며 막걸리의 육안관찰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지우의 인지능력과 기억력, 단순화시킨 의사표현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지우가 비행접시 날리는 기구를 2개 들고 나와 같이 날리기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준모와 비행접시 날리기 시합을 하면 지우는 제대로 날리지 못하여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 오늘은 뜻밖에도 공중으로 잘 날렸습니다. 오늘따라 지우가 문득 많이 자란 느낌을 주어 흐뭇했습니다. 할머니와 동화책을 읽고 블록도 조립하고 움직이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중에 아범이 도착했습니다. 조손이 만나 놀다보면 정이 더 들어 헤어질 때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내일 소민이 100일 잔치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마주보며 힘껏 손을 흔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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