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여행과 답사(2021년)

대구지역 볼거리를 찾아서

돌샘 2021. 10. 24. 13:11

대구지역 볼거리를 찾아서

(2021.10)

팔공산엔 갓바위동화사(桐華寺)’가 널리 알려져 있다. 갓바위 오르는 길에 계단이 엄청 많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동화사 방문을 결정했다. 산사를 들어서자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에 봉서루(鳳棲樓)가 위엄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각 지붕너머로 보이는 바위 능선이 절을 병풍처럼 에워싼 형상이라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누각 밑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자 대웅전 건물이 앞을 가로막듯 모습을 드러냈다. 기단에 서서 대웅전의 불단에 모셔진 세 분 부처님과 탱화 그리고 닫집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불교미술에 문외한이라 제대로 감상할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게 아쉬웠다. 범종루와 설법전을 둘러보고 사천왕상이 모셔진 옹호문(擁護門)을 나섰다. 계곡의 해탈교를 건너 약사대불로 향하다가 길옆에 서있는 당간지주를 구경했다. 석재가 깨끗해 보였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었다. ‘통일약사대불이 조성된 뜰 안으로 들어서자, 시선이 온통 웅장한 불상에 집중되었다. 약사대불은 1992년에 조성된 석불로 높이가 33m라고 했다. 대불 앞에는 석등, 입구에는 화려한 3층 석탑이 좌우에 배치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봉황문 근처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갔다. 암벽에 돋을새김으로 조성됐는데 불상과 광배, 연꽃대좌 등이 화려하고 생동감 있게 보였다. 마애불은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었다. 산사라 그런지 날이 일찍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대구 근대화골목 여행에 나섰다.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을 비롯해 선교사 주택 3, 제일교회, 3.1만세 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 길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명을 받으니 운치가 더 있었다. 청라언덕의 푸른 담쟁이 넝쿨은 없어졌는지 밤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다. 선교사 블레어 주택’, ‘챔니스 주택’, ‘스윗즈 주택1910년경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저마다 독특한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야간에 인적이 끊긴 언덕에서 옛 서양식 건물을 대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제일교회는 크게 증축되었지만, ‘계산성당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반가웠다. ‘3.1만세 운동길은 이리저리 찾아 헤매었는데, 알고 보니 언덕에서 계산성당으로 내려가는 골목길이었다. 이상화 고택은 대문이 닫힌 상태라 담 너머로 잠깐 살펴보았다. 근대화골목 유적을 찾아다니는 동안 소리 없이 밤이 깊었다.

 

경상감영공원은 새롭게 단장되어 외관상 유적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경상감영은 조선후기 경상도를 다스리던 지방관청으로 관찰사가 기거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이 훼손되어 감영의 정청이던 선화당과 관찰사의 처소인 징청각만 남아있었다. 건물이 말끔해 보였지만 안내문을 읽어보니 1807년에 지었고 1970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선화당 전면 우측에는 측우기를 받치는 측우대가 있었는데, 1770년에 제작된 것으로 국보에 지정됐다고 한다(모형 전시). 연못가 멋진 종각에 매달려 있는 범종을 바라보며 공원을 나섰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화원유원지를 찾았다. 유원지에는 사문진나루터가 아담하게 조성돼 있었다. 주변을 개발할 때 강변을 정리하고 제방을 쌓은 듯, 옛 모습이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수령 500년 팽나무 주변에 복원해 놓은 주막촌에는 관광객들이 북적대었다. 공원은 장승과 피아노, 풍차, 배 등의 조형물과 분수를 설치해 잘 꾸며 놓았다. 피아노 조형물은 1900년 대구지역에 부임한 미국인 선교사가 한국 최초로 피아노를 낙동강 배편으로 실어와 이곳 나루터로 들어온 것을 기념한 것이라 한다. 선착장 옆 강변엔 데크 교량이 길게 설치되고, 상류 쪽엔 금호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며 습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옛 사람은 강물처럼 돌아오지 않는데, 숫한 사연들만 모래처럼 나루터에 쌓였나 보다.

 

마비정벽화마을을 찾아 나섰다. 벽화마을이라 하면 으레 도회지 낙후된 지역이나 변두리를 연상하게 되는데, 마비정 마을은 시가지와 멀찍이 떨어진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다. 주민들이 나와 주차장 관리를 하고, 동네 골목엔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할머니도 보였다. 담장에 그려진 그림에는 해학이 담겨 있고 수준도 상당한 듯 보였다. 그림 외에 옛 우물과 정자, 거북바위, 남근석 그리고 느림보 우체통 등의 조형물이 설치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음식점도 있었지만 두부와 묵을 만들어 판매하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솟대를 만드는 공방에 들러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을 구경했다. 큰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따가운 가을햇살에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낙동강변에 있는 달성 도동서원(道東書院)을 찾았다. 서원 앞에는 은행나무 노거수가 굵은 가지를 늘어뜨리고 함초롬히 비를 맞고 서있었다. 수령이 400년이라 했다. 서원 정문 역할을 하는 수월루(水月樓)는 마침 보수공사 중이라 문간채를 통해 서원으로 들어섰다. 좌우에 동·서재인 거인재(居仁齋)’거의재(居義齋)’가 마주보았고, 뒤쪽 중앙엔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이 자리 잡았다. 강당 전면 기단 돌에는 이색적으로 용머리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 조각이 보였다. 강당 뒤쪽 가파른 계단 위에 내삼문이 있고, 안에는 사당이 모셔졌다. 수월루와 서원 사이에는 낮고 아담한 담장이 설치돼, 자그마한 환주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도동서원은 앞쪽에 학문을 하는 강학영역, 뒤쪽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자리한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였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개소 중 여덟 번째 서원의 방문을 마친 셈이다.

 

(동화사)

 

 

(근대화골목)

 

 

(경상감영공원)

 

 

(사문진나루터, 화원유원지)

 

 

(마비정 벽화마을)

 

 

(도동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