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濯足)의 즐거움을 느끼며...
(2023.7.2.)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도 되기 전인데 한낮 더위가 보통이 아니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잊는 피서법이 생각났다. 숲속의 맑은 계곡수 하면 좀 멀기는 해도 양평 용문사 계곡만한 장소가 없는 것 같다. 점심을 일찍 챙겨먹고 돗자리와 수건을 들고 집을 나섰다. 용문사 입구의 출입은 무료 개방되었지만 주변은 여전히 잘 관리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냇가를 지나 일주문을 들어서자 벌써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길옆 인공수로엔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르고, 그곳에 들어가 걷는 성급한 방문객도 보였다. 아래 계곡 쪽에서는 육중하고 장쾌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옛사람들이 더위를 잊기 위해 물 좋은 시내를 찾아 발을 씻었다는 말은 일찍부터 들어왔지만, 그 묘미를 알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다. 흔히들 족욕(足浴) 또는 세족(洗足)이라 말하지만 탁족(濯足)이라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용문사로 오르는 방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탁족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비탈진 물가로 조심조심 내려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갔다. 상쾌한 느낌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바위에 걸터앉으니 귓가엔 물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오고, 자연 그대로의 쾌적함이 온몸을 감싸고도는 듯했다.
탁족으로 더위가 물러가자, 새로운 힘이 생겨 산책을 겸해 용문사로 올랐다. 계곡 물소리를 뒤로 하고 사천왕문을 들어서자, 높은 계단 옆에 우뚝 선 은행나무가 시야를 사로잡았다. 수령이 약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42m에 이르는 웅장한 거목으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돼 있었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나이가 많다고 한다. 절을 한 바퀴 돌았는데 어느 지점에 서도 은행나무가 보였다. 절을 나와 하산하면서 다시 한 번 탁족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주위 바위 위에 세워진 크고 작은 돌탑들을 바라보며 그 소망들을 생각했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세수를 하고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집으로 가는 길에 팔당역 부근 음식점에 들러 시원한 ‘초계국수’를 별미로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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