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가을비 내리던 날 저녁 외출

돌샘 2013. 11. 3. 16:21

가을비 내리던 날 저녁 외출

(2013.10.29)

어둡기 전에 준모와 같이 외출하려고 서둘러 출발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 가까이 다다르니 가을비가 제법 세차게 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파트 출입문을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있었는데 문이 열리자

준모가 할머니에게 안겨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우산을 현관에 내려놓고 거실로 들어가니 준모가 할애비에게 안겨 상의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주었습니다.

놀다가 준모가 현관으로 가서 빗물에 젖은 우산을 만지기에 외출하고 싶어 그러나 생각되어

거실 창문으로 데리고 와 비가 오는 밖을 가리키며 ‘준모야! 지금은 비가 오니 비가 그치면 할아버지와 외출하자’고 했더니

뭐라 뭐라 말을 하고는 거실로 돌아와 놀면서 외출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조손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듯합니다.

요즘은 준모에게 ‘준모야!’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한다기에 몇 번 불러보니 정말 대답을 예쁘게 잘 했습니다.

‘준모야! 할아버지하고 동영상 볼까?’했더니 준모가 얼른 소파에 올라가서 앉았습니다.

준모에게 동영상 볼 때는 바로 앉아서 보아야 한다고 했더니 이제는 습관화되어

동영상을 볼 때면 소파에 앉거나 할애비 무릎에 앉아서 본답니다.

20개월 정도의 월령이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보통 5분 내외라고 하는데 준모는 오늘 할애비 스마트폰의 동영상을

10분 이상 집중하여 보면서 때로는 미소를 짓기도 하고 가끔은 큰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제법 시간이 지나 비는 그쳤지만 어둠이 밀려왔습니다.

현관밖에 있던 자동차에 우산을 싣고 조손이 기쁜 마음으로 외출 길에 나섰습니다.

 

공원 가는 길과 매일상가 가는 삼거리 갈래 길에서 할애비는 은근히 공원으로 갔으면 했는데

준모가 매일상가 쪽으로 자동차 손잡이를 돌려 방향을 잡았습니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가리키며 ‘준모야! 파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더니 의젓하게 신호등을 쳐다보며 서있었습니다.

매일상가 앞 사거리에서는 스스로 자동차에 얼른 올라타고 길을 건너자마자 내렸습니다.

찻길을 건널 때는 안기거나 자동차를 타고 안전하게 건너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준모가 그 말을 기억하고는 스스로 실천하는 것 같았습니다.

준모의 발길은 자연히 매일상가에 있는 은행 현금지급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여

화면 속의 버턴을 몇 번 눌러보고는 다시 거목상가 쪽을 향했습니다.

자동차를 밀며 걸어가는 보도 한 쪽에는 조금 전에 내린 빗물이 고여 있었는데 준모가 그쪽을 향하면

할애비는 핸들을 돌려 차가 물 있는 곳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잠원역 출입구에서는 엘리베이터도 타고 싶고 계단으로도 내려가고 싶은지 기웃거리기에 할애비가

‘준모야! 오늘은 늦어서 안 되고 다음에 시간나면 할아버지와 같이 내려가자’고 했더니 말을 알아들은 듯 순순히 물러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준모가 갑자기 웃으면서 자동차를 밀며 뛰어가더니 말릴 틈도 없이 빗물이 고인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올 때부터 준모는 빗물 고인 곳에 들어가서 발을 굴리며 첨벙대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할애비가 만류를 하니 참았다가는 드디어 기회를 잡아 실행에 옮긴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난감했으나 위험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일이 아니라면 준모가 하고 싶은 장난을

자꾸 만류하기보다 해보도록 하는 것도 돌보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물에 뛰어 들어가 깔깔대고 웃으며 발을 번갈아 굴리며 첨벙될 때는

‘준모야! 신발이 다 젖었지. 괜찮니?’하고는 그만할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렸습니다.

 

할머니가 집 앞 공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준모가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할애비에게 다가와 안겨서는 떨어지질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같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와 자동차 조수석 문을 열고 우산을 넣어두었는데

어느새 준모가 쏜살같이 조수석에 올라타더니 다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핸들을 좌우로 돌리며 제법 그럴 듯하게 운전하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다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가운데 실내등을 발견하고는 직접 버턴을 눌러 불을 켜기도 하였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에는 할애비 손을 꼭 잡고 아파트 안쪽으로 끌어당겼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거실에 들어설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실내에 들어와서는 손가락으로 식탁의자를 가리키며 거기에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할애비가 준모와 함께 산책을 하며 즐겁게 해주려고 왔는데 잘못하여 울리고 가면 안 되니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할애비가 준모 손을 잡으려고 해도 스스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곳이 아니면 손을 뿌리치고

자유롭게 행동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준모가 할애비 손을 잡고 놓지 않으니 예사 일이 아닌 듯합니다.

준모 저녁 음식이 식탁에 차려진 후에 ‘준모야! 맛있겠다. 할아버지는 손 씻고 올께’하고는

겨우 허락을 받아 손을 씻고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현관 쪽에 서서 준모 할머니에게

‘나는 지금 조용히 나갈 터이니 준모 식사 계속하도록 하세요.’하는 말을 남기고는 현관을 나섰습니다.

 

준모는 정이 많고 그 표현도 풍부하여 종종 할애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안전과 관련된 사항이나 행동규범도 반복하여 이야기해 준 내용은 기억을 하여 지키려고 하는 것이 기특합니다.

준모야!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고 두 분 할머님 말씀 잘 듣고 무럭무럭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