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2~3세

증조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했어요

돌샘 2014. 5. 26. 23:27

증조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했어요

(2014.5.24)

오늘은 준모가 무척이나 바쁜 날입니다.

아침에는 서울에서 김해로 내려가 종이모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마산으로 건너와서

증조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며 밤에는 서울로 되돌아갈 예정이기 때문이지요.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준모네 가족이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아

혼자 슬그머니 아파트 아래에 내려가 서성이었더니 얼마 안 있어 도착하였습니다.

새아기가 안고 있던 잠든 준모를 할애비가 안으니

잠결에 눈을 살포시 뜨고는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할애비를 만났으니 누군가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범내외가 할머니께 문안인사를 올리니 준모도 아범 옆에서 증조할머니께 절을 하였는데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서 절하는 흉내만 낼뿐 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준모가 긴 시간의 여행에 피곤도 하고 선잠을 깨어 심기가 다소 불편한 모양입니다.

준모가 어린이 놀이터에 나가서 비닐 공을 차고 미끄럼틀도 타고 미끄럼틀 위에서 공을 던지며

깔깔대고 웃으며 놀고 들어온 후에는 생기를 되찾아

활기찬 행동을 보이는 일상적인 상태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제사 모실 시간이 다되어 준모 고모할머니(大姑母) 내외가 도착하자

아범내외가 절을 하였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준모 앞에는 방석을 깔아주었지요.

그러자 준모가 직접 방석의 방향을 틀어 증조할머니께 먼저 바른 자세로 공손히 절을 올리고

그 다음에 고모할머니 내외에게도 절을 하였습니다.

준모가 도착한 직후 증조할머니께 어설픈 자세로 절을 하던 모습을 보았던 사람들은

준모의 절하는 자세가 완전히 바뀌고 스스로 증조할머니께 먼저 절을 드리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모두들 놀라움과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감탄을 연발하였답니다.

그간에 있었던 내용과 설 무렵 할애비가 준모에게 절을 가르칠 때 방석을 깔고

그 위에서 절을 하도록 하였다는 설명을 듣고는

고모할아버지가 ‘역시 양반집 자손은 다르다.’며 준모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요.

병풍을 치고 제수를 제상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는데 준모도 제기를 들어 옮기며 한몫 거들었습니다.

할애비는 준모가 혹시 제기를 떨어뜨려 발등을 다칠까봐

그만하도록 만류를 하였지만 다 옮겨 질 때까지 계속하였습니다.

제수를 진설하고 제사를 모시려고 하는데 준모는 제상 양쪽에 놓여진

촛대와 양초를 보고는 촛불놀이를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할애비가 ‘준모야! 제사모시고 나서 준모가 촛불을 끄도록 할 터이니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더니 ‘네’하고는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제사를 모시면서 참사자들이 절을 하면 준모도 따라서 절을 하였는데 자세가 다시 흐트러졌습니다.

종헌까지 올린 후 시조부님 제사에 처음 참사(參祀)한

새아기가 술을 올리도록 하였더니 준모도 엄마 옆에서 절을 하였습니다.

그 때도 아범이 준모의 절하는 자세를 바로 잡아주어야 했지요.

제사를 모시는 도중 준모 앞에는 특별히 방석이 하나 놓여졌습니다.

그랬더니 준모가 방석 위에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자세를 취하며 절을 하였습니다.

합문(闔門 : 거실에서 제사를 모실 경우 불을 끄고 참사자가 제자리에 엎드려 몇 분 동안 기다리는 절차)하는 동안은

할애비 곁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준모가 불을 끄고 어두운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들겠다 싶어서

나지막한 소리로 준모야! 증조할아버지 혼령이 계시니 조용히 앉아있어야 된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네’하며 대답하였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철상을 하니 준모가 다시 참여하여 음식이 담긴 제기를 들고 날랐습니다.

오늘 아버님 제사에 영혼이 강림하셔서 참사자 모두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셨겠지만

특히 3살(27개월)된 증손자가 제사를 모시는 과정에 보인 언행을 내려다보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시고 기특해 하셨을까요?

 

저녁을 먹고 준모네 가족은 서울 가는 열차시간에 맞추어

먼저 일어나 하직인사를 올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준모 할머니는 집에 있는 분들을 고려해서 역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서

집으로 되돌아가고 할애비가 역까지 동행을 하였습니다.

준모는 기분이 좋아 팔짝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어서 역으로 향했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나 건널목,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안겼지만 먼 길을 걸었는데도

넓은 대합실에 도착하자마자 활기차게 이곳저곳을 휘젓고 뛰어다녀 할애비가 뒤쫓아 가기에 바빴습니다.

열차의 출발시간이 밤 9시가 넘어서이니 12시는 되어야 서울역에 도착할 터이고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나 될 것 같습니다.

 

준모야! 오늘 서울에서 김해 결혼식장으로, 다시 마산 증조할아버지 제사에 참사(參祀)하고

당일 서울로 되돌아가는 긴시간 장거리 여정에 고생이 많았다.

제사 때 네가 보인 언행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답지 않게 정말 의젓하고 사려 깊었다.

손자가 올바른 품행으로 여러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니

할애비도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지고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찼단다.

늦은 밤, 편히 자고 피로를 풀어 다시 활기찬 내일을 맞이하세요.

안녕~. 우리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