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셋째 해

할머니 생신 축하드렸어요

돌샘 2014. 8. 30. 12:03

할머니 생신 축하드렸어요

(2014.8.23)

준모 할머니 생일에 가족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도 준모의 최우선 관심사는 하늘정원에서 할애비와 물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계단을 급히 올라 정원으로 나가서는 대뜸 물분사기부터 집어 들었습니다.

밥 먹고 물놀이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였지만 ‘할머니 생신이니까 케이크에 촛불을 켜면

준모가 꺼야지’했더니 촛불이라는 말에 혹하여 거실로 내려왔습니다.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준모가 입김으로 촛불을 끄기 시작하였는데

마지막 하나를 할머니가 끄고 나니 불만스런 표정을 짓더니 다시 불을 붙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촛불을 다시 켜주겠다는 말에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어른들이 포도주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였는데 이를 보고 있던 준모가 갑자기 물통을 들고

자기하고도 건배를 하자고 제의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대로 건배를 하였답니다. 

 

식사 후에는 예정대로 옥상에서 조손간 물놀이가 벌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화분과 화단 그리고 장독대와 벽에 얌전하게 물을 뿌리더니

서서히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줄기가 슬쩍슬쩍 할애비 쪽을 향하는 듯했는데

갑자기 준모가 ‘도망 가! 도망 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물벼락을 날렸습니다.

당황하여 이리저리 피하는 할애비 모습에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의자 뒤에 숨으면 등받이에 있는 틈새로 연신 물을 쏘아댔습니다.

이제는 분사기를 할애비에게 건네고 자기한테 물을 쏘아달라고 하였습니다.

물줄기가 가늘게 분산되도록 조정하여 준모에게 물을 뿌리니 깔깔대며 뛰어가

얼른 벽모서리 뒤쪽에 몸을 숨기고는 약을 올리듯 얼굴을 내밀었다 숨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준모가 분사기로 물놀이하던 초창기만 해도 물줄기가 길게 분사되어

멀리 날아가는 현상 자체를 신기해하였기 때문에

할머니나 고모가 정원에 나와 구경을 하곤 하였지요.

그런데 요즘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물을 뿌리면

비명을 지르고 물을 피하는 행동을 웃으며 즐기기 때문에

딴사람들은 얼씬도 못하고 조손만의 공간이 된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로 코코몽 몇 편을 보고는 조손이 외출에 나섰습니다.

아파트 중앙광장을 지날 때만 해도 뒤따라가는 할애비를 힐긋힐긋 뒤돌아보면서 걸어갔는데

중앙광장을 벗어나자 후문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후문을 나와서는 조손간에 자그만 실랑이가 벌어졌답니다.

할애비는 차가 다니니 안전을 위해서 손을 잡고 가야한다 하고

준모는 혼자 갈 수 있다며 손을 뿌리치고 자기가슴에 두 손을 올려놓았습니다.

마침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이 광경을 보고 웃었답니다.

준모도 마음이 바뀌어 위험하다고 판단하였는지, 간청하는 할애비가 측은하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큰 목적(?)을 위해 사소한 일은 양보하였는지 드디어 준모가 손을 내밀어

조손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었는데 자연스럽게 마트 건너편에 다다랐습니다.

이번에는 준모가 먼저 두 팔을 벌려 안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할애비와 외출할 때면 차가 다니는 길을 건널 때 안겨서 건너야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을 기억하여 자발적으로 안겨왔으니 기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길을 건너자마자 다시 내리고는 마트에 들어가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할애비도 준모가 좋아하는 과자를 직접 찾을 수가 없어 점원의 도움을 받아

마이구미 2개와 고래밥 하나를 사들고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과자를 먹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즘은 커튼이나 문 뒤쪽에 숨으면 준모가 너무 쉽게 찾아내 재미가 반감됩니다.

안방 쪽문 안쪽은 숨을 곳이 많지만 어둡기 때문에 손전등을 들고 숨바꼭질을 하기로 했습니다.

준모는 손전등 불빛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비추어보고는 찾아 나섰는데

할애비가 꼭꼭 숨어 잘 찾기지 않으면 할머니에게 어디에 숨었는지 살짝 물어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도 낮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아 거실 소파 앞에 보료를 깔고 누우면서

‘준모야! 한 숨 자고 또 놀자’고 했더니 옆에 따라 누웠습니다.

이제 자려나 보다 생각하는 순간 할애비 위로 올라가 얼굴을 짓누르더니

일어나 배를 밟고 소파에 올라가고 깔깔거리며 뛰어내리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할애비가 무릎은 꿇고 엎드리니 얼른 등에 올라 말 타는 자세를 취하더니

다시 내려와 옆구리를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넘어진 할애비 위에 몸을 덮쳐 레슬링 하듯이 온몸을 뒤엉키게 하여 장난을 쳤습니다.

할애비도 준모의 몸을 잡고 보료 위를 구르니 그야말로 레슬링 시합이 벌어졌답니다.

조손의 웃음소리와 ‘얏’, ‘얍’, ‘영차’하는 기합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범이 준모를 데리러 오자 ‘준모야! 아빠 따라 집에 갈래 아니면 할아버지하고 여기서 잘래?’하고 물었더니

‘하부하고 여기’하면서 같이 자겠다고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저녁준비를 하여 낮에 잘 먹던 전을 데워주니 ‘달걀~달걀~’하면서 프라이를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프라이를 해주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였는데

여태껏 봐왔기에 망정이지 체할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음식을 항상 맛있게 먹으니 보기에도 좋고 장만한 사람도 보람을 느낄 듯합니다.

밥을 먹다가 마주 앉은 할애비에게 ‘아빠 갔어?’하고 물어

‘아빠 저기 있다.’하면서 소파 쪽을 가리키니 힐끗 한번 뒤돌아보고는 식사를 계속하였습니다.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할 때는 아빠에게 ‘엄마 있어?’하며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관을 나설 때는 할머니에게 뽀뽀를 해드리고

‘재미있겠다. 재미있겠다.’라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준모 할머니는 ‘오늘 재미있었다.’는 말을

‘재미있겠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였답니다.

 

준모야! 오늘 재미있게 잘 놀았니?

조손이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려면

할애비도 평소에 체력관리를 잘 해두어야 되겠구나.

좋은 꿈꾸고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세요.

안녕~. 우리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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