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집 방문기
(둘째 날)
(2017.7.23.)
이른 아침부터 천둥 번개가 치며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조손이 하늘정원 나가는 계단에 나란히 앉아 정원에 있는 꽃들과 석물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습니다.
녹색 인조잔디에는 물이 고이고 빗방울이 떨어져 둥근 무늬를 쉼 없이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준모는 문무기에 물을 넣고 힘껏 뿜어 멀리 있는 석물들을 맞혔습니다.
나에게 분무기를 건네고 해보라며 자기의 물 뿌리는 솜씨를 은근히 뽐내었습니다.
준모는 비가 와 밖에서 놀 수 없는 사정을 확인하고 피구 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휴일 이른 아침이라 소음을 고려해 2층 방에서 고모와 함께 피구놀이를 했습니다.
어제 조카와 못 놀아주었으니 오늘 외출할 때까지 정성껏 놀아줄 모양입니다.
문방구 가게 놀이를 할 때도 고모가 동참을 하니 손님이 늘어났습니다.
가게 놀이를 통해 준모에게 큰 숫자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려고 하지만,
너무 일찍 가르치려다 역효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오늘은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어놓고 만 단위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만 해주었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작은 숫자에 대한 셈은 또래아이들보다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서둘 필요가 없습니다.
준모 스스로도 가게 놀이 도중에 셈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놀이로 전환하였습니다.
준모가 고모와 큰 블록으로 주사위 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이것 말고 여러 개를 던져서 도망가고, 잡는 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명절에 몇 번 해보았던 ‘윷놀이’를 말하는 모양입니다.
윷짝과 윷판 그리고 윷말을 찾아와 때 아닌 윷놀이를 벌렸습니다.
준모가 ‘도, 개 걸, 윷, 모’ 등의 등급은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윷놀이가 지루해지자 바둑 알까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늘은 평소 자주 해보지 못하는 놀이를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바둑판을 가져와 알까기 놀이를 시작했는데 준모가 제안한 알까기 방법으로
변경한 후에는 실력이 모두 비슷해져 막상막하가 되었습니다.
점심 무렵 아범이 공항에 도착하여 잘 다녀오겠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준모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는 ‘아빠! 출장 가지마라~’라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준모의 또 다른 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범이 효자 아들을 둔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오후에는 비가 그쳐 놀이터에 놀러나갔는데 준모는 멋진 모자를 쓰고 갔습니다.
놀이기구를 이용한 놀이와 공차기, 술래잡기를 번갈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수반하는 공차기를 가장 좋아 했습니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땀을 식힐 겸 ‘맥 드라이브’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습니다.
마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준모야! 고모 시집가는 것 알아?’하고 물었더니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준모가 미소를 지으며 ‘하부! 고모 시집가면, 고모 방을 내 방 하면 안 돼?’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고모 시집가면 준모 방 하면 돼지.’하고 대답했더니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준모는 ‘시집간다는 말을 오랫동안 멀리 가 있는 것’ 쯤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고모가 쓰던 방을 자기 방으로 하려는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 집에도 자기 전용 방을 두고 싶은 모양입니다.
현관을 들어설 때 준모가 흩어져 있던 슬리퍼를 챙겨서 바로 놓았습니다.
내가 벗은 신발과 자기 신발도 가지런히 놓고 ‘내가 신발 정리했어!’하였습니다.
현관 쪽을 바라보니 신발들이 줄을 맞춰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에게도 알려 준모가 현관 신발들을 잘 정리해 놓은 상태를 보도록 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내키면 청소나 물건 정리를 곧잘 했는데 다행히 좋은 습관으로 굳어진 모양입니다.
놀다가 뜬금없이 ‘지금쯤 아빠가 도착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아직 도착 안했어. 새벽쯤 되어야 도착할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요 녀석 봐라. 제법이다.’하는 생각과 함께 깊은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치킨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준모가 ‘나는 다리고기가 맛있어.
다리고기 먹을 거야.’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손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치킨 1마리와 다리부위 반 마리를 주문했습니다.
실제 먹을 때도 닭다리만 먹지 다른 부위의 살은 손도 대지 않고 남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음식과 부위가 정해진 것을 보면 미식가의 기질을 타고난 모양입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고모가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묻고는
고모가 오면 피구도 하고 알까기 놀이도 한다면서 기다렸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준모는 집에 가서 유치원에 등원을 해야 하므로 문구류 중 일부를 미리 챙겼습니다.
고모를 그렇게 기다리더니 도착하기 전에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놀았으니 체력이 장사라도 피곤하겠지요.
내일 아침엔 피곤이 풀리도록 고모가 집에 도착했을 때도 깨우지 않고 그냥 재웠습니다.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
손자 옆에 누워 행복감에 젖어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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