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여행과 답사(2021년)

남산정상을 걸어 오르다

돌샘 2021. 4. 23. 22:12

남산정상을 걸어 오르다

(2021.4.18.)

그간 간간이 남산을 찾기는 했지만, 주로 봄철 꽃구경과 가을 단풍놀이를 위해 둘레길을 걸었다. 남산정상을 찾을 때는 승용차나 순환버스를 이용했기에, 걸어 오른 일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남산을 찾은 목적이 정상에서 경치구경을 하는 것이지, 남산길 산책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4월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남산 벚꽃구경은 늦었고, 서울타워에 올라 도심과 한강 주변 변화된 서울모습이나 구경하고자 했다. 요즘 일반승용차는 남산을 오를 수 없으니, 남산 순환버스를 이용할 생각으로 정류장 위치를 확인해 놓았다. 집사람과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의견을 조율해 보았다. 무릎이 안 좋은 상태인데도 정상까지 걸어 오르는 방법을 염두에 두고 코스까지 검토해 본 모양이다. 국립극장 쪽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거리도 멀어, 남산도서관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더 좋다고... 뜻밖이었다. 방문시간은 서울의 야경도 볼만 하겠지만, 일몰시간이 늦으니 오후에 남산을 찾아 숲길을 걷고 타워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기로 했다.

 

405번 시내버스를 타고 반포대교, 보광동, 이태원을 지나 남산도서관 앞에서 하차했다. 40년 전쯤 회사사옥이 이 부근에 있던 시절, 개나리가 한창 핀 어느 봄날 토요일에 오전근무를 마치고 가족을 만나 즐겁게 산책했던 일이 떠올랐다. 큰 아이가 돌이 되기 전인 신혼 때였으니, 토요일 오전은 정상 근무를 하던 시대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앞에는 큼직한 다산 정약용동상이 우뚝 서있었다. 남산 능선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높다란 서울타워가 시야에 들어왔다. 산을 오르는 진입로 입구에는 화사한 봄꽃으로 단장한 화단이 조성되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산을 걸어 오르는 길은 포장도로였지만, 울창한 숲으로 파란 하늘이 가리었다 살짝 들어나기를 반복했다. 길가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들은 꽃잎을 모두 떨구었지만, 철쭉과 영산홍 그리고 이름 모를 화목들이 분홍빛과 하얀 꽃들을 연신 피워 내고 있었다. 연두 빛 고운 새잎은 눈을 편안하게 했고, 싱그러운 숲속공기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듯했다.

 

나뭇잎사이로 타워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갈림길이 나타났다. 곧장 걸어가면 순환버스 종점이 나오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남산타워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비탈길을 걷는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타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건물 내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 궁금증을 풀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과 연결된 5층을 통해 남산정상을 밟았다. 먼저, 정상에 마련된 야외전망대로 가서 시가지 쪽 전경을 찬찬히 바라보고, 타워 옆 단층건물 옥상에 올라 툭 트인 한강방향 경치를 감상했다. 높은 타워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면 더 넓고 멀리까지 볼 수는 있겠으나, 유리창을 통해 경치를 보게 되면 선명도가 떨어지고 얼룩까지 보이는 현상을 고려해서다. 티켓을 끊어 엘리베이터 타는 곳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빛을 투사해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는 장치가 있었다. 예전에 보지 못한 시설이라 호기심을 가지고 잠시 구경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원의 요청에 따라 천장의 영상을 쳐다보니 금방 전망대에 도착했다. 고속주행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봐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는 배려인 듯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유리창 너머 시가지 쪽 경치가 보였다. 시가지 외곽을 둘러싼 산세를 가만히 바라보니 안산, 인왕산, 북악산, 불암산은 물론이고 멀리 북한산 여러 봉우리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종로 쪽에는 숲속에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의 한옥건물들이 보이는데, 경복궁의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의 푸른 지붕은 보였지만, 앞쪽의 경복궁 정전과 여러 부속건물들은 고층빌딩에 가려진 듯했다. 남산 가까이로는 장충체육관, 한옥마을과 타입캡슐 등이 보였다. 반대편 남쪽 창가로 돌아가서 한강유역 전망을 살펴보았다.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줄기와 롯데타워,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모양의 교량들 그리고 관악산, 여의도의 높은 빌딩들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왔다. 여의도와 한강하류 쪽은 역광을 받아 안개가 낀 듯 흐릿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남산 기슭에서 한강까지 넓게 펼쳐진 녹지는 용산 미군기지인 모양이다.

 

타워를 내려와 사랑의 열쇠로 가득 채워진 난간과 열쇠 탑(?)들을 쭉~ 둘러보았다. 남산 팔각정은 보수공사로 가림막을 설치해 놓아 볼 수가 없었다. 하산을 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시 한 번 시가지와 한강 쪽 경치를 조망했다. 남산정상을 걸어 오를 때 30~40분 정도 소요되었으니, 내려갈 때도 건강을 위해 걷기로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다가 남산야외식물원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빠져나갔다. 흙길에다 튀어나온 돌부리를 피해 걷느라 조심스러웠지만, 신록의 계절에 숲속 나무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기운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숲길이 끝날 때쯤 웬 장끼한 마리가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가는 방향이라 그냥 다가섰더니, 잔디밭으로 들어갔을 뿐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았다. 깃털이 화려한 야생의 꿩을 만나니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심 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며 청정한 기운을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

 

(남산 오르내리는 길)

 

 

 

(남산 정상에서)

 

 

 

(N 서울타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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