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누정(樓亭)과 서원(書院) 탐방
(2021.6.5.)
우리나라 전통문화라 하면 먼저 안동을 떠올리는데, 함양지방에도 선비문화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함양부근을 지나갈 일이 있어, 지나는 길에 이름난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그리고 서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육십령 터널을 지나 서상IC에서 국도로 빠져나왔다. 국도 26번을 타고 ‘안의’ 방향으로 나아가자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의 지류가 도로 주변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계곡이 이름난 함양의 ‘화림동계곡’인 모양이다.
계곡사이로 기와지붕이 얼핏 보여 차를 세웠더니, ‘화림동계곡 안내도’가 서있었다. ‘화림동 거연정 일원’은 명승 제86호라고 한다. ‘거연정(居然亭)’은 창원시에 있는 집안의 정자와 이름이 같아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곳이다. 정자는 계곡 한가운데 형성된 기암 위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계곡수와 암반으로 구성된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노거수 우거진 계곡을 걸어 들어가 시퍼런 물길 위로 난 목재다리를 건너서, 정자의 마루에 올라섰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건물 형태로,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단아한 모습이었다. 불규칙한 형상의 자연암반을 기초로 삼아, 정자의 기둥 길이가 모두 다르게 축조되어 있었다. 뛰어난 주변 경관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건축방식에서 거연(居然)이라는 삶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군자정(君子亭)은 군자가 머물던 곳이란 뜻이라는데, 하천변 암반 위에 세워져 있었다. 건물의 정면은 5자 주칸 3칸, 측면은 4자 주칸 2칸으로 아담한 크기였다. 처음엔 인근 음식점에서 군자정을 모방해 지은 부속건물쯤으로 여겼는데, 안내문을 읽고 나서야 탐방할 정자라는 걸 알았다. ‘5자 주칸’이나 ‘4자 주칸’이란 기둥간격이 5자와 4자란 의미로 상당히 좁았다. 일반적인 정자 건물보다 작고 소박하다보니 착각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계곡 옆 평평한 자연암반에 정자의 측면이 계곡을 향하도록 건축되어 있었다. 정자로 올라가는 목재 계단이 파손된 채, 출입이 금지된 점이 아쉬웠다.
계곡 한가운데 넓은 반석이 보이고 하천변 암반에 정자가 우뚝 솟아있었는데, 동호정(東湖亭)이라 했다. 정자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태로 높다랗게 건축되어 있었으며, 1936년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정자에 오르는 계단은 큰 통나무를 이용해 투박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정자와 잘 어울렸다. 실내로 들어서니 다양한 모양의 목공예와 문양 그리고 단청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정자 앞 계곡에는 강폭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널찍한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고, 영가대(詠歌臺), 금적암(琴笛岩) 등의 각석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주변 경치도 좋았지만,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정자에 세월의 연륜이 내려앉아 고색창연해 보이니 더욱 운치가 있었다.
농월정(弄月亭)은 주변이 국민관광지이자 유원지와 오토캠핑장이 있어 큰 기대를 안고 찾았다. 표지판을 보고 도착한 곳엔 음식점만 있을 뿐 정자는 얼른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서니 넓은 계곡 전체가 큰 암반으로 이루어졌고, 맑은 냇물이 힘차게 흘렀다. 다른 방문객과 얘기를 나누어보니 정자는 계곡건너편 상류 쪽에 있단다. 계곡 하류에 있는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정자로 향했다. 농월(弄月)이란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 위 냇물에 비친 달빛을 한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의미라 한다. 정자는 2016년에 복원된 전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단청으로 꾸며져 있었다. 정자 오른쪽 바위에 큼직하게 새겨진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란 글자가 옛 일을 얘기하는 듯했다. 아름다운 경치는 화림동 계곡에서 으뜸이지만, 냇물에 비친 달빛을 희롱해보지 못해 아쉬웠다.
남계서원으로 가는 도중 ‘안의 광풍루’에 들렀다. 함양의 3대 누각으로 유명하다지만, 누각 앞에 도로가 나고 하천제방이 축조돼 옛 풍취는 찾을 길이 없었다. 광풍루(光風樓)의 광풍은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따온 말로 ‘비가 갠 뒤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란 뜻으로 인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웅장한 모습이었다. 광풍루 주변엔 옛 현감들의 선정비가 줄지어 서있었다.
남계서원(濫溪書院)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에 등록된 9개 서원 중 하나로 작은 구릉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원으로 다가서자 하마비와 홍살문 그리고 정문격인 풍영루(風咏樓)가 차례로 나왔다. 외삼문을 들어서자 먼저 ‘묘정비’가 있고, 양쪽엔 동재와 서재 그리고 정면 중앙엔 강당인 명성당(明誠堂)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당 뒤쪽에 있는 높은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 내삼문을 들어서자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나왔다. 내삼문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서원 건물의 지붕들이 일직선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사당을 서원 뒤쪽 높은 곳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원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헐리지 않았다고 한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 청계서원(靑溪書院)이란 자그마한 서원이 있었다. 먼 길을 온 김에 마저 구경하기로 했다. 정문인 취도문(就道門)을 들어서자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며 있었고, 정면엔 강당이 자리했다. 강당 앞에는 용트림을 하듯 몸을 비틀며 자란 노송(老松)이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서원은 1906년에 지었다고 하는데, 소나무의 수령은 수백 년이 되어 보였다. 강당과 소나무를 함께 바라보니, 건물이 노송을 배려한 듯 정중앙을 살짝 비켜나 있었다. 강당 뒤쪽 언덕엔 사당인 청계사가 있으며, 무오사화 때 희생된 ‘탁영 김일손’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주변 산비탈에는 하얀 밤꽃이 만발하여 여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함양지역 누정(樓亭)과 서원(書院) 탐방을 마치며, 옛 선비들의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생활상을 생각해 보았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광풍루)
(남계서원)
(청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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