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여행과 답사(2022년)

강원도 고성 해안

돌샘 2022. 1. 29. 18:36

강원도 고성 해안(화진포, 백섬 해상전망대, 능파대, 천학정)

(2022.1.22.)

겨울바다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들뜬 기분이 들었다. 양평과 홍천을 지나 황태 덕장이 늘어선 인제 용대리에 들어서자 진부령과 미시령길이 나뉘는 삼거리가 나왔다. 한겨울이라 매바위 인공폭포는 꽁꽁 얼어 멀리서 보아도 온통 하얀 빙벽을 이루었다. 지나는 길에 얼음 구경이나 하며 잠시 쉬어갈 양으로 하천변에 다가섰다.

하천 건너 절벽아래는 응달이 져 흰 눈이 남아있었는데, 뜻밖에 울긋불긋한 텐트와 헬멧을 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는데 주위엔 나 말고도 구경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빙벽 중간 중간에 로프를 길게 드리운 채 사람들이 매달려 있고, 아래엔 팀원들이 위를 바라보며 애를 태우고 있었다. 빙벽 등반가들이 한겨울 제철을 만난 모양이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빙벽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각종 로프 외에도 등반화에 부착된 장치며 손에 든 전문장비가 시야에 들어왔다. 빙벽의 얼음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듯 큰 고드름과 종류석 모양이었는데,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감돌았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을 강원도 인제에 와서 실컷 구경한 한 셈이다. 인공폭포 맞은 편 언덕엔 백골병단 전적비가 우뚝 서있었다.

 

점심을 먹고 화진포 바닷가로 향하는 길에 이승만대통령 기념관을 지나게 되었다. 딸아이가 대학에 수시 합격했던 해 가족여행을 와서 들렀던 일이 생각났다. 20년 가까이 흐른 옛일이지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기념관 앞 넓은 호수는 하얀 설원으로 변해 있었다. 호수 표면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눈이 소복이 내렸나 보다. 호수가 얼어버리고 나면 오리들은 어디에 가서 먹이를 구할까?

바닷가로 나가보니 화진포해수욕장 넓은 백사장도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가족과 연인 방문객들이 간간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겨울해변의 한적한 분위기는 살아있었다. 검푸른 바다는 가마득한 수평선으로 끝이 없었고, 백사장엔 물결이 쉼 없이 밀려와 하얀 포말을 남기며 부서지고 있었다. 좌측엔 초도항 등대와 무인도인 금구도’, 우측엔 모래밭 너머로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다.

화진포에서 거진항으로 넘어가는 해안도로변에 백섬 해상전망대가 있었다. 몇 년 전 방문했을 때 보이지 않던 시설이니 근래에 만들어졌나 보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사진 데크를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 겨울바다는 푸르고도 맑아 깊은 바다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광경이 겨울바다의 운치를 더했다. 북쪽 바다 건너 돌출된 해안에는 대진항등대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바다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가진항으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어항이라 조용했지만 스킨스쿠버 강습 중인 대원과 출항을 기다리는 낚시꾼들이 보였다. ‘공진현항까지 이어지는 긴 해변은 넓은 모래밭과 아기자기한 기암괴석이 구경거리였다. 기암과 수뭇개바위는 생김새도 특이하거니와 암반에 자란 나무의 생명력이 신비로웠다. ‘송지호해변앞바다에는 죽도섬이 홀로 떠있고, 오른쪽 언덕 정상부엔 하얀 등대가 보였다. 등대 앞 해안 바위는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나가 독특한 모양의 서낭바위를 형성했다. 우측에 방파제로 둘러싸인 작은 항구가 있었는데 오호항이라 했다.

 

오호항에서 문암항’ ‘능파대에 이르는 해안 길은 봉수대, 삼포, 자작도, 백도 등 한적하고 경치 좋은 해수욕장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였다. 능파대의 능파(凌波)’란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옛 시인과 묵객들이 바닷가의 어떤 풍광을 보고 연상해 묘사한 말일까? 능파대에는 곰보바위(타포니)가 만들어지는 지질학적 과정은 잘 설명돼 있었으나 능파에 관한 문학적 풀이는 없었다.

촛대바위로 유명한 동해 추암해변도 능파대라 일컫는다는 안내문을 읽어봤던 기억이 났다. 독특하게 생긴 바위 모양은 물론 파도가 망망대해로부터 끊임없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며 출렁이던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능파대도 기묘하게 생긴 바위 모양이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와 부딪히며 하얀 물결을 일으키는 풍광은 동일했다. 부서지는 물결을 여인의 하얀 치맛자락이나 버선에 비유한다면, 파도 위를 걷는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연상될 수 있으려나?

교암항옆 언덕에 있는 천학정을 찾았다. 정자로 올라가는 계단 주위 비탈면에 늘어선 노송이 눈길을 끌었다. 수령이 100년도 넘었음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강풍 피해를 입은 듯 아쉽게도 큰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가 여럿 보였다. 계단이 끝나는 곳 해안 절벽에 전면 2,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가 자리했다. 단층을 했지만 드러나지 않고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듯 다소곳한 모습이었다. 짙푸른 바다와 해안 절벽, 기암과 일렁이는 물결 그리고 푸른 노송들... 신선이 노닐던 정자로 손색이 없는 듯했다.

 

강원도 고성의 겨울바다는 쓸쓸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맑고 깨끗해 신선한 기운을 받기에 좋았다. 지나온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고 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매바위 인공폭포 빙벽)

 

 

(화진포)

 

 

(백섬 전망대)

 

 

(가진항~공현진해변)

 

 

(송지호해변~백도해변)

 

 

(능파대)

 

 

(천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