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둘째 해

구두를 신발장에 넣었어요

돌샘 2013. 11. 17. 14:35

구두를 신발장에 챙겨 넣었어요

(2013.11.13)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준모가 할머니에게 안겨 현관 밖에서 웃으며 맞이해 주었으며 현관을 가리키며 들어가자고 하였습니다.

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가니 준모가 현관에서 신발장 문을 열고 무엇을 하고 있었으나 외출하자고 할까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지요.

준모가 거실에 들어와서는 할애비와 마주앉아 손뼉도 치고 손을 흔들면서 깔깔대고 웃으며 놀았습니다.

전화는 자주 통화했지만 2주일 만에 직접 대면을 하니 행동이나 의사표현 방법이 제법 의젓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앉아서 논 후에는 준모가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한 후에 소파에 올라가서 바른 자세로 앉았습니다.

할애비는 준모가 이야기한 내용만으로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행동을 보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려고 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답니다.

준모는 할애비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동영상을 보다가 나중에는 무릎에 올라앉아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우스운 장면이 나오면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하였습니다. 이윽고 관심이 외출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준모가 열이 나기도 하니 옷을 두툼하게 입혀서 가급적 짧게 외출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준모에게 외출복을 입히고 신을 신긴 후에 할애비도 신을 신으려고 하였으나 현관에 있어야 할 구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준모 할머니에게 ‘내 신발을 치웠느냐?’고 물었더니 ‘아니요’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참 이상하다 생각하며 혹시나 하고 신발장 문을 열어보았더니

그곳에 구두 한 짝은 다른 신발사이에 있고 다른 한 짝은 뒤쪽에 얹혀있었습니다.

우리 준모가 참 대단합니다.

이제 20개월 남짓한데 할애비가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 정리를 하였으니 말입니다.

아까 할애비가 손을 씻고 거실에 들어왔을 때 준모가 현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벗어놓은 구두를 신발장에 넣어 정리를 한 모양입니다.

현관을 나설 때 할머니가 준모에게 ‘오늘은 유모차에 타야 한다.’고 이야기하니 준모가 싫다는 의사표현을 했는데

할머니가 ‘날씨도 추운데 유모차 타지 않으면 외출 못한다.’고 했더니 준모가 수긍을 하고 양보를 했습니다.

준모가 아직 세부적인 말은 못하지만 할머니와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신기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준모가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고집을 피우거나 고함을 지르기도 했는데

이제는 양보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깥 날씨는 어제보다 풀렸지만 찬 공기가 준모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유모차에 태운 채로 부근을 한 바퀴 둘러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잠원역에 들어가 유모차에서 내려주었더니 신이 났습니다.

넓은 실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탑승객들이 출입하는 개폐기 등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개폐기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준모야! 안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다음에 할아버지와 놀러갈 때 들어가는 거야.’하고 이야기했더니

말뜻을 알아들은 듯 승객들의 출입을 가만히 지켜볼 뿐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준모가 개폐기 옆에 있는 ‘HELP'라 쓰인 버턴을 누르니 제법 큰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벨이라 잘 들리도록 큰 소리가 나는 모양입니다.

준모는 큰소리가 울리니 처음에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작은 소리가 났으면 신기해하며 자꾸 버턴을 누르려고 하였을 터인데 더 이상 누르지 않았습니다.

잠원역은 탑승객들이 많지 않은 곳이니 준모가 놀기에 적합한 실내장소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외출을 가급적 짧게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조손이 실내에서 놀았는데 오늘은 준모의 기분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았습니다.

 

준모는 요즈음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보고 따라하려는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할애비 구두를 신발장에 챙겨 넣어 깜짝 놀라게 했는데

그 외에도 다 먹은 생수병을 현관 옆 창고의 재활용품 모아두는 상자에 갖다 넣기도 하고

식탁의자를 옮겨 놓고 올라가서 설거지도 직접 하려고 한답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도 준모와 같은 아이들의 이러한 성향을 고려해서 교육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가르침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