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2018년

한밤중의 물싸움

돌샘 2018. 8. 24. 22:10

한밤중의 물싸움

(2018.8.12.)

무더위에 외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실내에서 뒹굴다 무료한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상을 마주하니 벌써 내일 폭염 속 출퇴근할 생각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집사람 핸드폰 벨이 울리더니 누군가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통화가 끝날 무렵 준모와 지우를 데리고 오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누구한테서 온 무슨 전화냐고 물었습니다.

아범이 사돈댁에서 보내주시는 과일과 채소를 전하러 준모와 지우를 대동하고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거실을 정리한 후에 긴바지를 갈아입었습니다.

오늘은 손주들이 각자 가방에 갈아입을 여벌의 옷을 준비하여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늘정원으로 직행할 줄 알았는데 TV 어린이 프로부터 한두 편을 보았습니다.

한낮 더위 속에서 소모한 체력을 보충하고 본격적인 놀이를 할 요량인가 봅니다.

준모가 놀이터에서 놀기를 원하여 축구공을 들고 아범과 지우도 동행하여 밖으로 나갔습니다.

더위는 다소 가셨지만 전력을 절약하느라 격등으로 불을 켜놓아 놀이터가 어두컴컴했습니다.

처음엔 공을 손으로 바운드 시켜 잡는 놀이를 하다가 불빛에 서서히 적응되자 공을 차기 시작했습니다.

준모가 찬 공이 놀이터 울타리를 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차도까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범과 지우는 집에 잠깐 다니러가고 자리에 없었습니다.

공도 공이지만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준모는 인도에 서 있도록 하고 차가 지나간 사이 안전하게 공을 주웠습니다.

준모가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도록 하려면 인근 서초중학교 운동장으로 가야할 모양입니다.

밤이 제법 깊은 시간이라 놀이터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고 놀려니 재미가 반감되었습니다.

지우도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노느라 얼굴에 땀이 맺혔습니다.

땀이 많이 나고 더우니 이제 물놀이를 하자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늘정원에 불을 밝히고 준모와 지우, 할애비가 땀 흘린 옷차림 그대로 물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밤이 이슥했지만 한낮의 열기에 수돗물이 미지근할 정도로 알맞게 데워져 있었습니다.

준모가 분사기를 덥석 잡더니 ‘하하하~’ 웃으며 내게 물벼락을 날렸습니다.

처음엔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서 움찔했지만 땀과 더위를 식혀주는 물세례가 싫지 않았습니다.

신사협정(?)을 통해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분사기를 잡고 물을 뿌릴 수 있는 권한을 갖기로 했습니다.

준모가 권한을 가질 때는 깔깔거리며 나에게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고,

지우는 특별한 표적 없이 이곳저곳 그리고 울타리 밖까지 물을 뿌려대었습니다.

울타리 밖으로 물줄기가 날아가 외부 사람이 물벼락을 맞으면 야단맞는다며 만류를 시켰습니다.

내가 분사기를 잡았을 때 준모에게는 시원하게 물세례를 날리고

지우에게는 가는 물줄기로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그 때 준모가 큰소리로 ‘으하하~’ 하며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나 ‘내 동생에게 물을 뿌리지 마!’ 하였습니다.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처럼 '야~'하는 기합과 함께 분사기를 빼앗아 갔습니다.

놀이 중이었지만 준모가 동생을 보호해 주는 오빠 노릇을 톡톡이 했습니다.

한밤중 아파트 옥상에서 때 아닌 악당과 주인공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고함과 괴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더위는 물줄기에 씻겨내리고 밤이 깊어가자 별들도 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만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 즐겁고 힘찬 한 주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