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3~4세 성장기록

할머니 생일에 촛불 많겠네

돌샘 2015. 9. 11. 22:12

할머니 생일에 촛불 많겠네

(2015.9.6)

준모가 물총을 들고 하늘정원으로 나가 물통에 물을 넣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물총을 가지고 노려나 생각하며 물을 가득 넣었는데 막상 물을 넣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물총은 옆에 두고 예전에 가지고 놀았던 분사기로 물을 뿌리며 놀았습니다.

물총은 야외에서 놀 때 유용한 장난감이지만 분사기가 옆에 있으니

작동이 간편하고 많은 물을 멀리까지 쏠 수 있는 것에 마음이 더 끌리나 봅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어 서늘한 느낌마저 드니

준모도 할애비에게 물벼락을 날리던 장난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바닥에 기어가는 개미와 벽에 붙어있는 거미를 겨냥하여 신나게 물을 뿌렸습니다.

그러다가 꽃에 앉은 ‘벌’을 보고는 ‘파리’다 외치며 물을 뿌리고

날아가는 방향으로 계속 조준을 하였습니다.

준모야! 저건 파리가 아니고 ‘벌’이야 했더니 ‘별?’하였습니다.

‘별’은 밤에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고 꽃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저 곤충은 ‘벌’이야 했더니

몇 번을 반복하여 따라 발음하며 '벌'이란 단어를 익혔습니다.

 

지우를 유모차에 태우고 조부모와 손자 손녀가 산책 겸 슈퍼에 가기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준모가 앞장서고 우리는 따라갔는데 놀이터에 이르러 초등학생들이 놀고 있으니

준모도 잠깐 놀이기구를 타다가 후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슈퍼에 가서 먹고 싶은 과자를 사는 일이 더 우선인 모양입니다.

‘준모야! 오늘은 뭘 살거니?’하고 물어보니 ‘짱구!’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번에는 ‘붕어빵’을 좋아했는데 오늘은 먹고 싶은 것이 바뀌었나 봅니다.

‘짱구’와 ‘초코 송이’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준모가 뜬금없이

‘하부! 저기 사람이 들고 가는 분홍색 가방이 뭐지?’하고 물었습니다.

할애비는 미처 가방을 보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내 귀에 대고 ‘베스킨 라빈스’ 포장 봉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부! 분홍색 가방이 뭐야?’하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자

준모가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웃으며 ‘아이스크림이야!’하고 알려주었습니다.

포장용 종이 백의 색깔과 무늬를 보고 안에 든 내용물을 알아맞히니 눈썰미와 기억력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간접 표현일까요?

부근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으니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사주어야겠습니다.

준모가 놀이터에서 놀고 가려고 하여 할머니와 지우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미끄럼틀과 회전 자전거 등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번갈아 타보고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준모는 집에 들어와 목욕탕에서 물놀이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할애비와 같이 하자고 제안하였지만 문을 열어놓고 가까이 있겠다는 조건으로 혼자서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물놀이가 끝날 즈음 할머니가 간단하게 목욕을 시켰습니다.

준모는 목욕을 하고 ‘또봇’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요사이는 낮잠을 잘 자지 않았는데 목욕을 하고 나니 개운하여 잠이 왔나봅니다.

 

준모가 저녁 무렵에 일어나 조손이 같이 식사를 하러 식탁으로 가는데

창문너머 구름을 보고는 ‘구름이 이상하게 생겼다.’면서 큰 아이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준모가 ‘할머니 좋아!’해서 ‘왜 좋은데?’하고 물으니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어서 좋아’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가 ‘다음 주 내 생일 케이크 촛불 끌 때 준모가 도와 줘~’하니까

‘예’하며 대답하고는 ‘할머니 몇 살이야?’하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60살이야’하니 ‘와~ 촛불 많겠네.’하였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생일 케이크에 꽂는 촛불 개수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아빠, 엄마, 조부모, 동생, 고모 등을 지칭하며 남자야? 여자야? 물으니 성별을 정확하게 알아맞혔습니다.

지난달에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일부 혼동을 하였는데 한 달 사이에 많이 달라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조손이 공차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아범과 새아기가 도착하여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준모가 ‘하부하고 더 놀래!’라고 하자 아범이 ‘준모 내일 노리안 안 갈 거야?’하니

씨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짐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비닐공도 가져가려고 해서 ‘준모야! 너희 집에도 공 있잖아. 이 공은 두고 가야

다음에 놀러오면 가지고 놀지.’했더니 ‘하부가 아까 이것 던졌다고 안 논다.’고 했잖아 하면서

팔에 차는 로봇 조종기를 꺼내 던졌던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로봇 조종기를 던지며 놀기에 ‘준모야! 던지면 깨어져.

깨어지면 가지고 놀 수가 없어.’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준모야! 자꾸 던지면 하부가 준모하고 안 놀 거야.’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마음에 걸렸나봅니다.

‘준모야! 던지면 장난감이 부서지니까 던지지 말라고 그랬던 거야.’라고 설명하자

조종기를 들어 보이며 ‘하부! 이 봐 안 깨어졌잖아.’하며 반박하였습니다.

‘하부가 다음에도 준모하고 잘 놀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니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공은 물론이고 조종기까지 두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조종기 누가 사주었니?’ 하고 물으니 ‘아빠가 사주었어.’라고 대답하고

‘언제 사주었지?’하고 물으니 ‘엄마 배가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 사 주었어. 엄마 안 아프면 좋겠어.’ 하였습니다.

지우 출산 때면 거의 6개월 전 일인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짐을 챙겨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내가 양손에 짐을 든 것을 보고는

준모가 ‘하나씩 나누어 들어야지!’하고는 괜찮다고 해도

짐을 빼앗듯이 받아 할머니가 기필코 하나를 들도록 하였습니다.

차를 타고는 준모가 조부모에게 ‘안녕히 계세요! 저희들 가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답니다.

간혹 고집을 부릴 때가 있기는 하지만 좋은 성품과 정이 많고 풍부한 감성,

정확한 기억력, 자기의사 표현력 등 뛰어난 자질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에둘러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거나 기억력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능력은

네 살배기 손자가 환갑지난 할애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 흐뭇하고 자랑스럽답니다.

 

준모야! 오늘은 너의 여러 가지 함축적인 표현과 논리적인 주장에 적이 당황했단다.

장난감 자꾸 던지면 같이 안 논다는 말에 마음이 상했어요?

이 할애비는 누가 뭐라 해도 영원한 우리 손자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안녕~ 우리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