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5~6세 성장기록

손주들의 재롱

돌샘 2017. 10. 14. 23:43

손주들의 재롱

(2017.10.3.)

집사람이 오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말투가 아범인 것 같았습니다.

사돈댁 밭에서 채소와 고구마를 수확하여 지나는 길에 들러 전하겠다는 내용인 모양입니다.

준모는 그 때 우리 집에 남아서 놀다가 저녁에 아범이 데리러 오는 것으로 의논된 모양입니다.

요즘처럼 두서없이 여러 가지 생각이 나고 마음이 허전할 때는

손주들과 놀면서 기분을 전환하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지요.

차가 도착하자 광장에 나가 준모와 지우를 맞았지만 지우는 안아보기만 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추석 전날이라 준모와 민속놀이 중의 하나인 윷놀이를 했습니다.

여러 번 해 본 터라 도, 개, 걸, 윷, 모 등 윷가락의 모양에 따른 이름은 물론

윷판에서 몇 칸을 가는 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윷과 모가 나오면 한 번 더 윷가락을 던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윷판에서 말을 운용하는 잔기술만 익히면 누구보다도 윷놀이를 잘 할 것 같았습니다.

준모가 어디서 배웠는지 어제 처음 선보였던 바둑알 팽이놀이를 또 하자고 하였습니다.

준모는 양손 엄지와 검지로 바둑알을 세워 잡고 양손을 비틀어서 팽이처럼 잘 돌렸지만

나는 손가락이 커서 그런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잘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왼손 검지로 바둑알을 세워 누르고 오른손 검지를 튕겨서 바둑알을 팽이처럼 돌렸습니다.

양손으로 바둑알 팽이를 돌릴 때는 준모의 적수가 되지 못했지만

손가락으로 튕기는 방법을 이용하자 대등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서로 막상막하의 대등한 실력이 되자 긴장된 상태에서 신중하게 팽이를 돌리고 재미가 더해졌습니다.

 

준모가 오늘은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작은 놀이터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좁아서 준모가 놀 곳이 못 된다고 하였지만 궁금해 하기에 일단 그 곳으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직접 보니까 유아들이 노는 곳으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큰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큰 놀이터에는 사촌자매끼리 놀러온 팀, 할아버지와 함께 나온 자매 팀,

부모와 같이 온 형제 팀 등 평소 보이지 않던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아마 추석을 앞두고 조부모나 친척 집에 부모들과 함께 온 아이들인가 봅니다.

손녀들과 놀러온 할아버지는 나와 같은 라인의 아파트에 살아 안면이 있는 분이지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준모를 보더니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여섯 살이라고 했더니 ‘와~ 크네요.’하며 부러워했습니다.

크다는 말에는 체격이 크다는 의미와 함께 공을 힘차게 잘 찬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할애비 마음이 한껏 뿌듯해져 미소를 지으며 답례를 했습니다.

사촌자매들의 요청으로 준모가 합류하여 3명이 공을 던지고 잡는 놀이를 했습니다.

자매 중 동생은 준모와 같은 나이인데 체격은 훨씬 작았습니다.

공 잡기 경쟁에서 항상 밀리자 준모가 잡은 공을 빼앗으려는 듯 앙칼지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자 준모가 한 걸음 물러서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여자아이가 뜻밖에 앙칼진 행동을 하자 순간적으로 놀라고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하긴 옆에서 보고 있던 할애비도 적잖게 당황을 했으니까요.

준모가 물러서지 않고 맞서서 다투었다면 체격이나 운동 발달 상태를 감안할 때

상대방이 다칠 가능성도 있었는데 의젓하게 잘 대처를 했습니다.

 

준모와 맥도널드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집사람의 전화가 왔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 놀이터 옆을 지나다 우리가 보이지 않으니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가게에서 합류하여 할머니가 준모 얼굴의 땀을 닦아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가 준모 샤워를 시키면서 ‘준모야! 할머니 집에 오면 뭐가 좋니?’하고 물으니

‘할머니 집에 오면 신나게 놀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어 좋고,

외갓집에 가면 재미있게 고구마도 캘 수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계란도 있어 좋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국어공부와 영어, 수학도 공부해야 하고 할 것이 많기 때문에 힘 든다.’고 하였답니다.

할머니가 지나가듯 물었는데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대답한 것을 보면 평소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겪는 힘든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지만 할애비도 묘안이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조손이 마주앉아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무렵, 아범이 지우와 함께 왔습니다.

낮에 오빠만 할머니 집에 남고 지우는 차를 타고 집에 갈 때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내가 주차장에서 안아줄 때는 같이 노는 줄 알았다가 집으로 가니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그 동안 참았던 흥을 한꺼번에 발산하는 듯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노래와 춤 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준모도 덩달아 노래를 부르니 예정에 없던 음악회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요즘 조부모의 허전한 마음을 손주들이 재롱을 부려 풀어주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