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6~7세 성장기록

할애비의 자업자득

돌샘 2018. 4. 23. 20:50

할애비의 자업자득

(2018.4.21.)

이질녀 작은 아들 결혼식이 역삼동 성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라 준모와 지우를 그 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역삼역에서 내려 약도를 보고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 준모가 멀리서 우리를 보고 웃으며 달려왔습니다.

와락 껴안고 일어서자 지우가 우리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듯했습니다.

혼주와 신랑을 비롯해 인척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 손주들과 성당 뜰로 내려갔습니다.

준모는 계단 측면 경사진 난간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듯 미끄러져 내려가며 좋아했습니다.

뜰 한쪽의 나무 그늘아래에 있는 의자에 앉아 놀다가 지우는 음악에 맞춰 춤도 추었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될 때 잠시 식장에 들어갔다가 종교예식이 시작될 무렵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뷔페식이 준비된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준모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그릇에 가득 담아왔지만 먹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각종 음료와 아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찾아 골고루 그릇에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함께 차를 타고 아파트에 와 준모와 나를 내려주면 우리는 놀이터에 가서 놀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트에서 시장도 보고 지우 장난감도 사기로 했습니다.

 

놀이터에 가지고 갈 공을 찾는 동안 준모는 나중에 장사놀이를 하자며 거실 창가에 포켓몬카드와 물건들을 진열했습니다.

하늘정원에 올라가서 할머니가 얻어 보관해두었던 화분과 인조 흙에 나팔꽃과 봉선화 씨를 심기도 했습니다.

조손이 공을 굴리며 놀이터로 다가가자 입구 쪽에는 여자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안쪽 넓은 곳으로 들어가 공차기를 시작했습니다.

조손이 함께 공을 차며 놀았던 때가 꽤 오래되었나 봅니다.

공이 몇 번 오가자 준모의 공차기 실력이 발휘되었습니다.

공이 놀이터 울타리를 넘기 시작했고 할애비가 공을 주우러 뛰어가면 준모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공차기가 재미를 더해가자 준모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어 ‘준모야! 누나들과 술래잡기 안할래?

술래잡기를 하고 있으면 내가 집에 가서 수건과 물을 가져올게.’하였지만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시 한 번 권유를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하고는 술래잡기에 합류했습니다.

집에 가서 서둘러 수건과 물을 챙겨오니 준모가 팔이 아프다며 술래잡기를 그만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팔이 왜 아파? 다쳤니? 놀다가 넘어졌어?’했지만 머리를 가로저으며 ‘아뇨’하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아까 성당에서 계단을 팔짝팔짝 뛰며 내려가다가 왼팔이 난간에 부딪혔다고 했는데 그 곳이 아픈가?

 

조손이 손을 잡고 동네 슈퍼를 찾았습니다.

준모가 할애비와 공을 차고 목이 마를 때면 으레 찾아오는 공식 ‘루트’이지요.

진열대에서 좋아하는 음료수 '코코팜'을 찾아 들고는 아이스크림 통을 열어 ‘보석바’를 하나 집었습니다.

나도 콘을 하나 골라 들고 놀이터로 되돌아왔습니다.

놀이터 의자에 앉아 조손이 아이스 바와 콘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음료수는 준모가 혼자 다 마시는 것을 보면 취향에 맞나 봅니다.

아이스 바와 음료수를 마시고 나자 원기가 회복되었는지 술래잡기를 하며 더 놀겠다고 하였습니다.

제법 큰 남자 아이들도 합류하여 술래잡기를 하는데 모두들 재빨랐습니다.

준모가 힘은 들었지만 ‘누나!’ 또는 ‘형!’이라 부르며 붙임성 있게 잘 놀았습니다.

장을 보고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집에 가려고 했지만 준모는 더 놀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이 많은 형, 누나들과 함께 노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나이를 물어보았더니 여자아이 한 명만 초등학교 2학년이고 나머지 세 명은 6학년이라 하였습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우리도 그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우는 새로운 장난감으로 ‘뽀로로 냉장고’를 샀나봅니다.

조립을 완료하여 가지고 놀다가 오빠가 오자 은근히 자랑을 하였습니다.

준모는 놀이터에 가기 전부터 상품을 진열했던 곳에 추가로 물건을 놓으며 장사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조부모가 번갈아 손님으로 등장하여 장사놀이를 하는데

준모와 지우는 틈틈이 과자와 장난감을 놓고 실랑이를 벌렸습니다.

지우가 틈을 노려 오빠가 가지고 있던 그릇에서 과자를 하나 들고 달아나면 준모가 돌려받으려 했고,

돌려받지 못하면 심통을 부려 지우의 장난감 냉장고 물건들을 흩어 버렸습니다.

지우는 오빠가 냉장고 물건을 흩뜨렸다며 울먹이며 칭얼대었습니다.

오늘따라 남매가 다투는 것이 마음에 거슬렸습니다.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여 과자를 주려면 많이 줘야지 왜 조금 주어 다투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일단 해결이 되자 준모가 지우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장사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놀다가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면 준모는 다시 냉장고 물건을 흩뜨리고

지우는 그때마다 우는 소리를 내며 칭얼거렸습니다.

준모에게 동생을 울리면 안 된다며 팔을 잡아 물건을 흩지 못하도록 말렸습니다.

할애비가 동생 편은 든다 생각되어 서운했던지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면서

‘엄마! 할아버지가 아프게 내 팔을 꽉 잡았어.’하며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어린손자의 그 말이 순간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자극하여 화로 변했습니다.

준모가 놀이하던 물건을 챙기며 포켓몬카드 포장지 2개를 바닥에 버렸습니다.

‘준모야! 저 포장지 주워라.’고 하자 ‘나중에 주울게요.’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목소리를 높여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 목소리를 높인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큰소리의 지시와 대답이 오간 끝에 할애비의 감정은 주체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큰 목소리로 화를 내며 준모를 나무라자

준모는 처음 보는 할애비의 화난 모습과 큰 목소리의 질책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준모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할애비의 인격수양이 부족해 벌어진 자업자득이니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애비가 어린손자에게 화를 낸 일은 참으로 부끄럽고도 창피한 일입니다.

화를 참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기록으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