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6~7세 성장기록

손자의 안경

돌샘 2018. 6. 30. 23:01

손자의 안경

(2018.6.23.)

한 달 여 전쯤 집사람이 뜬금없이 ‘준모가 시력이 안 좋아 안경을 써야 한대요.’했다.

갑자기 커다란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경을 쓰는 것은 외관상으로도 그렇지만,

준모는 워낙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았다.

어제는 집사람이 ‘준모가 안경을 쓴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 테니

눈에 익히라.’며 손자의 안경 쓴 사진을 보여주었다.

안경 쓴 모습을 자세히 훑어보았지만 어색하거나 거슬리는 면은 없고 야무지고 총명해 보였다.

손자의 안경을 계속 생각하다가 보니 안경에 얽힌 옛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큰형이 고등학생일 때니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이었나 보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다녀와 친구들과 놀러가려고 하는데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할아버지는 ‘허허~ 참! 그것 허~ 참!’을 연발하셨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큰형의 시력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안경을 써야 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고 했다.

집안의 기둥으로 애지중지하던 큰손자가 안경을 쓰게 되었으니 상심이 컸으리라.

‘어른들께 인사를 할 때는 반드시 안경을 벗고 인사를 해야 한다.’며

안경과 관련된 예절교육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젊은 사람이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게 예의가 아닌 것으로 여기던 시대였으니...

 

한 세대가 흐르고 나서 아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차례로 안경을 쓰게 되었다.

평소 생활습관을 바르게 지도하여 안경을 쓰지 않도록 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근시안은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유전적인 면도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는 안경을 안 쓰는데 왜 자식들은 모두 안경을 쓰게 되는 걸까?

큰아버지가 근시안이니 부계(父系)에 근시 유전인자가 있어 그런가보다고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 부부도 노안에 따른 난시용 안경을 쓰게 되었다.

책을 볼 때나 작은 글자를 읽으려면 돋보기까지 써야하니 안경 쓰는 불편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 경기도 민물고기 생태학습장에서 안경을 쓴 준모를 처음 보았다.

안경을 쓴 모습이 차분하고 눈빛은 총기로 빛났다.

할머니와 이구동성으로 ‘준모야! 안경을 쓰니까 더 멋있네.’하며 격려해주었다.

환하게 웃는 손자 얼굴을 보며 혹시나 했던 걱정은 날려 보내고 힘껏 안아주었다.

안경을 쓰는 불편함은 세월이 흐르면 점점 무디어질 것이다.

아범 어멈의 복잡했던 생각도 변함없는 준모의 일상생활은 보게 되면 아침이슬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할애비는 손자가 안경을 쓰는 현실너머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