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2~3세 성장기록

영어회화와 공사놀이 재미있어요

돌샘 2015. 1. 2. 11:20

영어회화와 공사놀이 재미있어요

(2014.12.26)

오늘은 회사 징검다리 휴무일이라 준모와 같이 놀기로 한 날입니다.

아범이 데려다 주고 출근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놀고 갈 예정이라 또봇과 기차 등 장난감도 여유 있게 가져왔습니다.

아범이 출근하기 위해서 집을 나설 때는 잘 다녀오라고 준모가 하이파이브를 해주었습니다.

조손이 식탁에 마주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데 준모가 할애비에게 뜬금없이

‘하부! 후 아 유 해봐. 후 아 유 해봐.’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준모가 영어를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준모가 시키는 대로 ‘Who are you?’했더니 바로 ‘아임 준모’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준모가 나에게 ‘후 아 유’하고 물었고 ‘아임 하부’라고 대답하였더니

할머니에게 ‘후 아 유’라고 묻고 ‘아임 할머니’라고 대답하는 등 아침식사 자리에서 때 아닌 영어 회화를 하였습니다.

세 살배기 손자 덕분에 평생 처음으로 가족끼리 앉아 영어회화 공부를 하였습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또봇(X, W, D)과 기차를 가지고 놀고는 작은 종이에 풀칠을 하여 큰 종이에 붙이는 놀이를 하는데

준모가 거실바닥에 풀칠을 해서 못하게 만류를 하니 갑자기 ‘엄마~ 나 엄마한테 갈래.’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엄마는 회사 가고 지금 집에 없어. 나중에 아빠 퇴근하면 같이 가서 엄마 만나야지.’했더니

준모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큰소리로 ‘아니야! 엄마 집에 있어. 집에 있는 다 했어.’하고 강조를 하였습니다.

‘그래 엄마 집에 있어. 하부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엄마는 나중에 만나야지.’하고 달랬습니다.

오후에 조손이 컴퓨터 방에서 놀 때도 준모가 불현듯 할애비에게 ‘엄마가 집에 있는데, 왜 할머니가 없다고 하지?’하고

물어와 ‘준모야! 할머니가 잘 몰라서 그랬던 모양이다.’하고 달랬는데 평소와 자못 다른 반응을 나타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을 하였더니 준모가 엄마에게 집에 있으라고 부탁을 하자 할머니 댁에서 놀다가 집에 도착할 시간보다

새아기가 퇴근하여 먼저 집에 도착할 것 같으니 집에 있겠다고 약속을 한 모양입니다.

약속에 대한 손자의 이러한 언행은 약속의 중요성과 신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답니다.

 

준모가 점심때는 할머니에게 대구 전을 부쳐 달라고 부탁을 하여 식사를 하고는

‘하부! 같이 공사놀이하자.’고 하였습니다.

할애비는 공놀이 하자는 말로 알고 준비를 하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장난감 기차 중에는 자석이 붙어 있는 크레인과 컨테이너 그리고 열차에 적재된

덤프트럭과 페이로드(흙을 퍼 트럭에 담는 장비)가 있었는데 준모가 크레인의 자석으로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트럭에 싣고 운반하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공사’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도 의외였지만 크레인으로 짐을 트럭에 싣고 운반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여 ‘준모야! 공사놀이 누가 가르쳐주었어?’하고 물으니

‘아빠가 가르쳐 주었어.’하며 놀이에 몰두하였습니다.

냉장고 벽에 붙여두었던 여러 가지 모양의 자석병따개를 가져와 공사놀이에 활용하였는데

한 세대 전의 옛일이 회상되어 혼자서 웃었답니다.

아범이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토목공사 장비인 포크레인(백호)의 이름과 용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느 날 유아원의 그림그리기 시간에 딴 아이들은 대부분 건물이나 사람, 산과 하늘 등을 그렸는데

아범은 포크레인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르쳐준 것을 잊지 않았다는 흐뭇한 마음과

혹시나 정서적으로 메마른 아이로 자랄까봐 은근히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하였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조손간의 놀이는 자연스럽게 ‘번개 맨’으로 이어졌습니다.

‘번개~’하며 양손을 가슴 앞에서 돌리다가 ‘파워!’하면서 손바닥을 상대방 쪽으로 내밀면 쓰러져야 하는 놀이입니다.

준모가 주인공이니 할애비가 주로 쓰러지는 역을 맡았지만

어쩌다가 먼저 ‘번개~파워!’를 외치면 준모도 쓰러지는 연기를 하였습니다.

 

퍼즐 맞추기를 하다가 오후 세시가 지나자 준모가 잠이 오는듯한 표정이라

할머니가 낮잠을 재우려고 업자고 해도 ‘싫어!’하고, 안방에 들어가 같이 자자고 해도

‘안 해! 놀 거야.’하며 ‘하부 같이 놀아 줘.’하면서 놀이를 계속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다가오면 ‘할머니는 방에 가서 자.’하며 방에 들어가도록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놀이를 번갈아 하다가 조손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준모의 지난 동영상도 보고 TV 뽀로로 프로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준모가 ‘잠 온다.’하더니 할애비 곁 소파위에 누워 곧 잠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거실에 요를 깔아 준모를 눕히고는 방으로 들어가고 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손자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적막감 속에 서서히 무료해졌습니다.

준모 곁에 누워 곤히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나도 어느새 단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밖은 어둑어둑해 오는데 준모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습니다.

준모가 잠든 지 두 시간쯤 되어서야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소파에 앉아있는 할애비를 보고는

웃으며 다가와 소파에 눕기에 이불을 덮어주고 조손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준비가 끝나 조손이 식탁에 앉으니 할머니가 달걀말이를 해와 준모식판에 올려주었습니다.

준모는 평소에도 달걀말이를 좋아하지만 오늘따라 더욱 맛있는 모양입니다.

식사 중에 고모가 퇴근을 하여 합류를 했는데 그릇에 담은 달걀말이를 내놓으니

준모의 시선은 그곳으로 집중되었습니다. 식판의 달걀은 놓아두고 새로 내놓은 달걀말이를 먹었습니다.

할머니가 그건 ‘고모가 먹을 거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고모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머리를 땋아 달라하여 묶고는 이곳저곳을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오늘도 준모가 자발적으로 할애비에게 절을 하였는데 자세나 동작이 제법 바르고 의젓해졌답니다.

아홉시쯤 되어 아범이 도착하자 준모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하는 것 같았습니다.

‘준모야! 하부하고 여기서 자자.’하고 두어 번 넌지시 떠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차장에 내려갈 때는 할애비에게 안기라고 해도 아빠에게 안겨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자고가려는 의사를 표현할 때도 있고 주로 할애비에게 안기는데

오늘은 아빠에게 안겨 집에 빨리 돌아가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집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것은 모두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입니다.

 

준모야! 오늘은 모처럼 조손이 긴 시간을 함께 했구나.

손자 덕분에 영어회화도 하고 약속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는 보람된 하루였단다.

엄마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재미있게 놀다가 편히 자거라.

우리 도련님! 안녕.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