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5~6세 성장기록

준모의 세배와 상경기

돌샘 2018. 2. 23. 22:33

준모의 세배와 상경기

(2018.2.16.)

준모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준비해온 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올해는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몇 사람에게 세배를 하게 되고 세뱃돈을 받을지 미리 헤아려보기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세배를 같이 받을 때는 세뱃돈도 함께 받는다고 일러두었습니다.

세배가 시작되자 준모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나고 신이 났습니다.

증조할머니, 큰할아버지 내외, 조부모, 작은할아버지 내외 순으로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을 때는 자기 순서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줄도 알았습니다.

당초 아빠에게도 세배를 할 예정이었지만 아빠와 할머니에게 살짝

혼자 절하기 부끄럽다고 이야기하여 다음 기회에 하도록 미루었습니다.

세배가 모두 끝난 후에는 준모가 내게 다가와 아빠에게 혼자 절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할아버지 집에서 엄마와 지우는 물론 고모와 고모부도 모여서

세배를 할 테니 그때 아빠에게 세배를 하면 된다고 안심을 시켰습니다.

조상님께 차례를 지낼 때는 준모도 참례하여 정성스럽게 절을 하였습니다.

차례를 지내고는 유일한 증손자로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는 새벽에 울산에서 온 종고모들과 장난도 치고

여러 가지 포즈의 셀카를 찍으며 격의 없이 어울렸습니다.

2년 전 섣달그믐날 종고모들과 ‘바둑 알까기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던 일을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준모는 헤어지기 아쉬운 듯했지만 증조할머니께 하직인사를 올리고

환송을 받으며 예약된 열차를 타러 역으로 갔습니다.

대합실에 도착하여 음료수를 마시며 내 곁에 앉아있던 준모가 저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을 쳐다보니 역내 편의점 간판이 있고 몇 가지 영어와 한글이 적혀있었습니다.

‘Smile Smart Speed’라는 영어가 적혀 있는 곳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발음을 해보였습니다.

‘아이구야! 우리 준모 영어 참 잘 하는구나.’하고 칭찬했더니 준모도 힘들게 배운 보람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열차 시간이 다가오자 조손이 손을 꼭 잡고 플랫폼으로 내려갔습니다.

 

조손이 함께 기차를 타고 장거리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인가 봅니다.

그간 우리는 주로 명절 다음날 상경을 했기에 준모식구들 환송하러 가곤했지요.

조부모가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며 환송하면

준모가 기차를 타고 같이 가자며 출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르쳐주곤 했지요.

그만해도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의젓한 소년티가 납니다.

열차가 출발하자 준모는 할머니 스마트 폰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창밖을 내다볼 경황도 없이 놀이에 열중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에야

동대구 부근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카드놀이와 애니메이션 보기를 반복하다가 보니 열차는 어느새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준모가 창밖 철교 아래로 흐르는 푸른 강물이 한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용산역에서 내려 중앙선을 타고 옥수역으로 가,

지하철 3호선을 갈아타고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준모는 내 손을 잡고 기분이 좋아 콩닥거리며 걷다가 계단을 내려갈 때

넓은 공간에서는 3~4 칸을 한꺼번에 뛰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위험하다고 만류를 했지만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안전하게 뛰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손을 꼭 잡고 리듬을 타면서 안전하게 내려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옥수역으로 가는 전동차를 갈아타니 경로석 세 좌석에 노부부가 앉고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준모야! 여기 자리 비었다. 여기 앉아라.’고 했더니 ‘나는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앉아요.’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배낭을 메고 있으니 안 앉아도 괜찮다. 준모가 앉아라.’했지만

‘할아버지가 앉으세요~’하면서 계속 양보를 했습니다.

엉거주춤 서있는 상태에서 준모가 웃으며 ‘할아버지! 내게 좋은 생각이 났어요.

할아버지가 먼저 이 자리에 앉으세요. 그러면 내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을게요. 그러면 되잖아요.’하였습니다.

듣고 보니 조손이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배낭을 멘 채 좌석에 앉자 준모가 웃으며 내 무릎에 걸터앉았습니다.

어린 손자가 나를 배려하여 양보하는 행동을 보고 할애비의 마음은 한없이 흐뭇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노부부중 할머니가 준모에게 ‘아이고! 정말 효자(효손을 효자로 표현)구나.

여기 앉아라.’며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고맙지만 괜찮다고 사양을 했으나 자기들을 곧 내린다며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준모가 할아버지를 배려한 언행은 옆에 앉았던 낯선 할머니까지 감동시킨 모양입니다.

우리 손자의 아름다운 심성이 주위 사람들까지 감동시키다니...

할애비 기분은 둥둥 떠 있는 기분이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옥수역에서 3호선을 갈아탔을 때는 모두 좌석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준모가 차창 밖 ‘신사역’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는 다음 역에서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잠원역에 도착하자 아빠 손을 잡고 안전하게 내려서는 조부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조부모도 열심히 손을 흔들며 ‘준모야! 잘 가~’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손자와 처음으로 열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고 지하철도 탔습니다.

그리고 손자의 효성스런 언행으로 하늘을 나는 듯한 행복감도 느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