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지우) 이야기/3~4세 성장기록

밖에 나가고 싶어요

돌샘 2018. 12. 21. 22:37

밖에 나가고 싶어요

(2018.12.15.)

날씨가 꽤 춥지만 준모가 어린이 축구시합에 출전하겠다고 하여 지우는 할머니 집에서 놀기로 했습니다. 지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발을 앞으로 내밀고는 예쁜 방한화를 신었다며 뽐내었습니다. 종아리까지 올라가는 빨간 방한화에는 예쁜 무늬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겨주자 ‘할아버지~’ 부르고는 ‘내 신발 예쁘죠?’하며 자랑했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차분하면서도 애교가 뚝뚝 묻어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옆방에 있던 바람 빠진 풍선을 가지고 나와 할머니에게 불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매듭을 풀고 바람을 불어주자 지우가 환하게 웃으며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여 주겠어요.’하며 어린이집 선생님 흉내를 내었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요구르트와 홍시를 맛있게 먹고는 과자를 보관하는 창고 안도 둘러보았습니다. 어린이용 TV 교육프로를 시청할 때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화면의 그림을 가리키며 교육에 동참했습니다. 오빠가 가지고 놀던 ‘포켓몬 카드’를 가져와서는 자기와 카드놀이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아직 카드놀이를 할 줄 모르지만 오빠가 할아버지와 카드놀이를 할 때면 자기도 같이 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카드를 나누어들고 각자 한 장씩 차례대로 내어 이긴 사람이 모두 가져가는 놀이를 진행했습니다. 지우는 놀이방법을 정확히 모르니 승패를 가르는 게임보다는 카드를 바닥에 펼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모부 울산 갔다 하고는 전화를 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고모부와 함께 놀았던 생각이 나나 봅니다.

 

할머니와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갑자기 말하는 상대도 없이 ‘집중해!’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새아기가 준모에게 무엇을 가르칠 때 하는 말을 듣고 흉내 내는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지우야! 지우는 집중 잘 하니?’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오빠는 잘 하는데 나는 잘 못해.’ 하였습니다. ‘아니야~ 지우도 집중 잘 해~ 우리 지우는 머리도 좋고 노래도 얼마나 잘 부르는데.’했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예전에도 지우와 대화를 할 때 오빠는 칭찬하고 자기는 낮추는 태도를 보였던 기억이 나 마음이 짠~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그런 말을 했다면 겸손하다고 좋아했겠지만, 어린나이에 그런 말을 하니 혹시 오빠만 칭찬해주는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이 아닌가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지우가 창 밖 놀이터를 내려다보며 ‘할아버지~ 밖에 나가서 놀아요.’ 하였습니다. ‘지우야~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밖에 나가 놀면 감기 걸리는데... 오늘은 안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할아버지와 밖에 나가 많이 놀자~.’했더니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잠시 후 손가락으로 창문 밖에 내려다보이는 길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저기 아이가 가네요.’하였습니다. ‘그래, 저기 있는 아이를 잘 봐. 추워서 엄마하고 빨리 집에 가려고 차를 타잖아.’ 했더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할아버지~ 저기도 사람이 가네.’하면서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습니다. ‘저 사람도 추워서 집에 가는 모양이다. 모자까지 썼잖아!’했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습니다. 지우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감기 걸린다고 하니 고집은 피우지는 못하고, 딴 사람들이 밖에 나와 있으니 우리도 나가자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모양입니다. 떼를 쓰거나 고집을 피우는 시기를 지나 제법 자란 것 같습니다. 이를 때일수록 지우의 뜻을 잘 헤아려 주어야겠습니다.

 

점심때는 지우가 좋아하는 하얀 국물(곰국)과 맵지 않게 씻은 김치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안마기에 올라앉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옆에서 봐주기만 하면 혼자서도 잘 놀았습니다. ‘할머니!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틀어줘!’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하여 노래를 틀어주자 조용히 동영상을 반복하여 보았습니다. 힐끗 화면을 보았더니 여러 사람이 춤추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할머니가 ‘지우야! 우리 지우가 노래 한번 불러봐라.’했더니 할머니를 향해 말없이 두 집게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습니다. 노래를 안 부르겠다는 의사를 다 큰 애들처럼 점잖게 표현해 조부모를 실컷 웃겼답니다. 현관 밖에서 준모 소리가 나더니 벨이 울렸습니다. 축구시합을 마치고 도착했습니다. 오늘도 준모가 시합에서 한 골을 멋지게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점심때 빵만 먹고 밥을 못 먹었다하여 급히 점심을 차려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준모가 거실에서 위쪽 창을 통해 밖을 쳐다보다가 이불이 덮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씨가 추워져 꽃이 열지 않도록 비닐천막 위에 이불을 덮어준 것이라고 설명하자 구경하겠다며 준모가 2층으로 올라가고 지우도 뒤따랐습니다. 하늘정원으로 나가는 출입문 밖 응달진 부위에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의 잔설이 보였습니다. 남매는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밖으로 뛰어나가 모종삽으로 눈을 긁어모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불 덮은 것 보겠다는 당초 의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눈을 모아 아파트 아래로 던지고 급기야 상대를 향해 눈을 뿌렸습니다. 감기 걸린다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만류하자 나에게도 눈을 던지며 장난을 쳤습니다. 지우 혼자 있을 때는 말을 잘 들었는데 남매가 의기투합하니 할애비가 만류하기 힘들었습니다. 할머니까지 동원되어서야 겨우 눈 장난을 중단하고 실내에 들어오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준모는 거실로 내려와 비행접시를 날리며 본격적으로 놀려고 하였지만 다음 주에 또 만나 장난감도 사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