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준모) 이야기/6~7세 성장기록

손자와 함께한 초가을 밤

돌샘 2018. 9. 22. 13:56

손자와 함께한 초가을 밤

(2018.9.12.)

서초 ‘서리풀 축제’의 일환으로 저녁에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제가 열리는 모양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모처럼 부부가 음악제 저녁 나들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퇴근을 조금 일찍 하여 저녁을 먹고 있는데 벨이 울렸습니다. 사돈댁에 생선을 전하러 갈 아범이 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사람이 화면을 보더니 ‘어~ 지우도 오네. 자나? 아범이 안고 있네.’ 하였습니다. 지우는 아범에게 안겨 비몽사몽 상태이고 준모는 환하게 웃으며 나타나 차분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범이 곧 출발하겠다고 하여 포장한 물건을 차에 실으러 집사람과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준모는 오자마자 가게 되었지만 ‘외갓집에 가니 좋은 모양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범이 지우를 안고 있어 내가 짐을 실을 트렁크를 정리하자 준모가 박스를 하나 들어 실었습니다. 부지런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준모의 모습이 흐뭇해 ‘허허~ 준모가 먼저 실었네.’하였습니다. ‘잘 가~’하면서 손을 흔들어주자 지우는 손을 흔드는데 준모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할머니가 차 문을 열어보니 준모가 울고 있었습니다. 웬 일인가 했더니, 준모는 조부모와 놀려고 왔는데 우리가 예술의 전당 음악제에 간다고 하니 아범이 그냥 데리고 가려했던 모양입니다. 3대가 모두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은 소통 부족으로 준모가 서운할 뻔했습니다. 준모는 남아 우리하고 놀다가 아범이 집에 갈 때 데려가도록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서둘러 준모의 저녁 준비를 했습니다. 계란 프라이와 오리고기를 굽고 감자와 있던 음식을 소반에 차려 거실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준모는 모처럼 거실에 앉아 유료 애니메이션을 보며 저녁을 먹었습니다. TV를 보면서 젓가락질도 해가며 음식을 점잖게 천천히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는 준모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의젓하고 믿음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조손이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잡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습니다. 예술의 전당에 모처럼 가지만 준모가 어릴 때는 자주 가보았던 곳이라 많은 추억이 쌓인 곳이지요. 자판기 음료수 좋아하던 일, 광장에서 할머니 가방 챙겨 들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당시 네 모습을 촬영하고 글도 써서 잘 보관해두었으니 나중에 크면 봐라.’고 하였습니다. 길을 가다가 신호등 앞에 멈추어 섰을 때 준모가 ‘할아버지! 아까 본 애니메이션이 몇 분짜리였어요?’하고 물었습니다. ‘13 분짜리였지.’했더니 ‘두 번 봤으니 그럼 26분 봤겠네요?’하였습니다. 의외였습니다. 예전에 숫자 셈하기에 대해 물어보면 한참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걸어가며 내가 셈하기 문제를 내자 준모가 쉽게 정답을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조금 어려운 문제를 내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정답을 맞혔습니다. ‘와~ 우리 준모 덧셈, 뺄셈 모두 잘하네. 짱이야!’하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준모야! 셈하는 방법을 누구한테서 배웠기에 그렇게 잘하니?’하고 묻자 ‘유치원에서는 너무 쉬운 것만 가르쳐줘서 어려운 것은 엄마한테 배웠어요.’하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편의점 선전용 영어 현수막을 발견하고 ‘준모야! 저기 영어가 뭐라고 적혀있니?’하고 물었더니 ‘나이스 투~’하며 세련된 발음을 하였습니다. 조손 모두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으며 걸으니 걸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손을 잡고 언덕길을 오르는데 준모가 ‘할아버지! 저기 불 켜진 곳이에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바로 저기가 예술의 전당이란다.’ 대답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행사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장으로 올라가자 관중들이 소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간이의자를 가져와 펼쳐놓고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악기연주와 가수의 열창이 번갈아 진행되었지만 준모가 관람하기에는 지루할 것 같았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재미없다며 딴 곳에 가자고 했을법한데 전면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준모야! 지루하지? 우리 저기 분수대 있는 곳으로 갈까.’했더니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분수대 맞은편 원탁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조잔디가 깔린 광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조손이 술래잡기, 묵찌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번갈아하며 초가을 밤의 신선함을 즐겼습니다. 분수 쇼를 하는 시간이 다가와 이왕 온 김에 쇼를 보고 갈까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술래잡기를 할 때는 운동장을 힘껏 달렸더니 숨이 가빠서 할머니와 번갈아 나섰습니다. 쇼가 시작되기 직전에 아범의 차가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정문 쪽으로 내려가며 준모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오늘은 조부모가 준모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손자의 의젓하고 늠름한 행동과 태도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산수 셈하기와 영어도 잘 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이 나누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손자’와 함께한 흐뭇한 초가을 밤. 음악제 하는 곳에서 큰 박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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