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이야기/2018년 이야기

할아버지 장난감 사주실 수 있으세요?

돌샘 2018. 12. 14. 22:58

할아버지 장난감 사주실 수 있으세요?

(2018.12.8.)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준모는 인사를 하고 현관 쪽 할머니에게로 뛰어갔습니다. 지우는 얼른 내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하며 장난을 쳤습니다. 아범의 출장과 우리의 귀향 등으로 4주 만에 만났으니 조금 뜸했던 셈입니다. 볼 때마다 이야기하는 방법이나 내용, 행동과 태도가 변하며 성장해 나가니 보고 싶은 생각이 더해만 갑니다. 오늘도 준모는 비행접시 날리기 시합을 하자며 비행체를 날리고 천장을 올려보느라 온통 정신이 팔렸습니다. 천정이 높은 할머니 집에 잘 어울리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거실에서 놀고 있던 지우는 치마 속에 입은 바지를 애써 걷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불편한 게 있나 싶어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지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추워서 치마 안에 바지를 입혔는데 바지 입는 것이 싫어서 그런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할머니에게 왜 치마를 입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지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편리함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 감각이 발달한 모양입니다. 남매가 조부모집에 놀러 올 때면 할애비가 자연히 오빠인 준모와 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우가 볼 때 편애하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신경을 써지만 오늘도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예전부터 함께 놀아주었던 습관도 있지만, 준모는 주로 어울려 노는 놀이를 하고 지우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놀이를 하기 때문이지요. 할머니와 아빠, 엄마 그리고 지우는 마트에 장보러간다고 했지만 준모는 집에서 놀겠다고 하였습니다. 지우가 현관으로 나가다가 내게 오더니 입을 쭉 내밀었습니다. 갑작스런 지우의 행동에 당황해하는데 ‘뽀뽀’를 해주려는 행동이라 하였습니다. 지우가 양 볼에 쪽~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해주자 할애비의 입이 활짝 벌어졌답니다.

 

비행접시를 날려 낙하할 때 잡아내는 시합은 활동적인 움직임과 찬사 또는 아쉬움이 뒤따랐습니다. 포켓몬 카드놀이를 할 때는 돋보기를 쓰고 열심히 해도 준모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준모는 중간 중간 놀이방법도 바꾸고 할애비를 놀리는 농담도 슬슬 섞어가며 재미있게 이끌어갔습니다. 조손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뜬금없이 ‘할아버지! 내 장난감 사주실 수 있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준모야~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니? 있으면 할아버지가 사 줄게.’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사고 싶은 것은 없어요.’하였습니다. ‘준모야~ 사고 싶은 장난감이 생기면 이야기 해~. 내가 사 줄게~.’하자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장난감 이야기가 나오면 당장 사달라며 졸랐을 텐데 정말 점잖고 의젓해졌습니다. ‘할아버지! 내 장난감 사주실 수 있으세요?’하는 준모 목소리가 자꾸 귓가를 맴도는 듯했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마트 장난감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고르도록 해야겠습니다. 카드놀이가 지루해질 무렵, 이제는 야구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아범과 함께 프로야구 응원도 다녀오더니 야구시합의 공수 교대와 점수계산도 잘 하였습니다. 현관문 밖에서 마트에 갔던 가족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준모는 얼른 소파에 누워 자는 체하며 장난을 쳤습니다. 할머니는 오늘 준모가 보자마자 사달라고 했던 족발을 사왔다고 했습니다. 지우는 낮잠을 자지 않은 탓에 졸리는 듯 안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지우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켜주려고 할애비가 방에 들어가 옆에 앉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지우가 누워서 영어알파벳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사는 알파벳 명칭이라 정확하지 않았지만 리듬과 가락은 입에 익은 듯 익숙했습니다. 지우가 마트에 갈 때 할머니와 이야기하다가 ‘지난번엔 돈 없다고 했잖아!’하며 예전 일을 기억하였고, 지난번 너희 집에 갈 때는 돈을 안 가져갔다고 해명하자, 다음에 올 때는 꼭 돈을 가져오라는 명령(?)도 하였답니다.

 

남매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보고 할머니와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손주들 좋아하는 김밥은 미리 싸두었고 준모가 주문한 족발은 사왔으니 파전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모두들 식탁에 둘러앉자 예상했던 음식 외에 할머니가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꼬치 어묵도 나왔습니다. 족발을 보자 준모가 지난번에 음식이름을 잘 몰라 ‘쇠고기’라 불렀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습니다. 손주들이 맛있게 저녁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준모는 저녁을 먹고 나서 더 놀고 싶어 했지만 안경도수 조정을 위해 가게가 문 닫기 전에 집을 나서야했습니다. 지우는 차를 타고 ‘할아버지! 이리와~ 뽀뽀 해줄게.’하고 불러, 양쪽 볼에 힘차게 뽀뽀를 해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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