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현판, 편액, 주련

거연정 상량문 이야기

돌샘 2021. 5. 21. 21:33

거연정(居然亭) 상량문(上樑文) 이야기

(2021.5)

2015년 가을 거연정명(居然亭銘)에 대한 어설픈 해석을 내놓으며, 나머지 편액들도 뜻있는 후손이나 한문 식자(識者)에 의해 해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러 가지 편액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상량문의 경우, 편액 사진을 올린 지 5년여 만인 2021년 초에 인쇄체로 옮긴 원문을 블로그에 다시 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번역을 하려고 시도해 봤지만, 문장 중간 중간에 나오는 고사와 성어 및 어려운 비유법에서 문맥이 막히곤 했다.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별 진전이 없어 애태우던 차에, 백촌 김창현님이 블로그에 들러 도움을 주시더니 해문(解文)을 작성해 주셨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상량문 편액은 거연정 좌측(건물 기준)에 있는 대청마루 중앙 위쪽에 전면을 향해 걸려 있다. 상량문 내용을 읽고 이해하기 편리하도록 전체 문장을 끊어서 원문과 음 그리고 해문(解文) 순서로 정리해 놓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옛날 집을 지을 때 길일(吉日)을 택해 상량식을 거행하고, 떡과 음식을 장만해 고생한 장인(匠人)들을 대접하던 모습을 상상하며 읽어보시기 바란다.

* 거연정 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양촌리 개양부락

* 상량 시기 : 1935년 음력 9월 하순(대문채는 1936)

 

 

 

上樑文(상량문)

 

在澗在阿以永 薖?之自矢 肯堂肯構克致 繼述之斯誠 居然我主人 允矣其君子

(재간재아이영 과축지자시 긍당긍구극치 계술지사성 거연아주인 윤의기군자)

물가와 언덕에 길이 은거하리라 스스로 맹세한 뒤 선조의 업적을 계승하고 이어 받은 정성을 다 하였으니, 평안한 우리 주인 되시는 분은 진실로 훌륭한 군자이시다.

 

竊惟八溪卞氏 文行右族忠義古家 體髮衣冠乃賢祖之家法 樵採耕稼矧良田之生涯 多子孫兮繞膝芝蘭 養性情焉滿目流峙 敦宗族有模範 張公之忍字可與儔 今敬墳墓如事生 甄君之思亭岡專美古

(절유팔계변씨 문행우족충의고가 체발의관내현조지가법 초채경가신량전지생애 다자손혜요슬지란 양성정언만목류치 돈종족유모범 장공지인자가여주 금경분묘여사생 견군지사정강전미고)

삼가 생각건대 팔계(초계의 옛 지명)변씨는 시서예악(詩書禮樂)을 실천한 명문거족의 집안이요, 충성과 절의를 지킨 오래된 집안일세. 신체발부와 의관은 바로 어진 조상의 가법이고, 나무하고 농사짓는 것이 하물며 양전(良田)마을의 생애임에랴. 자손의 번성함이여! 지초, 난초 같은 인물이 둘러있고, 성정을 길렀음이여, 산과 물이 눈에 가득하도다. 종족을 도타이 함에 모범을 보이니 장공(張公)의 인()자 백인설(百忍說)을 짝할 만하고, 지금 산소 공경하기를 살아계셨을 때와 같이하니 옛날 진군(甄君)의 사정(思亭)같은 정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로다.

 

積年經營於心上 不日突兀於眼前 是誠豺獺之知 豈偶山水之愛 松楸孔邇如見 陟降之靈 雨露旣濡自有怵惕之感 宿齊豫戒于是藏修 歌哭於斯觴咏之娛 只足爲風致一也 輪奐之美惡可謂能事畢焉 宐後嗣聿修其身 俾家聲不墜於地 試看近日之尙侈 孰若斯亭之致精 玆陳短謠以颺好事

(적년경영어심상 불일돌올어안전 시성시달지지 기우산수지애 송추공이여견 척강지령 우로기유자유출척지감 숙제예계우시장수 가곡어사상영지오 지족위풍치일야 륜환지미악가위능사필언 의후사율수기신 비가성불추어지 시간근일지상치 숙약사정지치정 자진단요이양호사)

여러 해 마음으로 경영하여, 하루가 되지 않아 눈앞에 우뚝 세웠으니 이는 참으로 시달(豺獺)도 아는 바이니, 어찌 우연히 산수를 좋아하는 것이겠는가. 선영이 매우 가까우니, 마치 오르내리는 신령을 보는 듯하고 비와 이슬에 젖으니, 절로 슬픈 감상이 생겨난다네. 재계하고 미리 경계하여, 이에 학문에 전념하고, 여기에서 노래하며 술 마시고 시 읊는 즐거움이여, 단지 풍치가 매한가지가 되고 성대한 아름다움이여, 어찌 능히 일을 끝마쳤다고 하리요. 마땅히 후손들이 그 몸을 닦아서, 가문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한번 근일의 사치를 숭상하는 것을 보라, 어느 게 이 정자의 정교함만 같은가. 이제 짧은 노래를 진술하여, 좋은 일을 드날리노라.

 

兒郞偉抛樑東 金岡沓翠葱瓏 望其睾如咫尺 神理幽明感通

(아랑위포량동 금강답취총롱 망기고여지척 신리유명감통)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저 동쪽에 금빛 언덕 겹겹이 푸르고 무성하네.

그 못을 바라보니 손닿을 듯 가깝고 신령은 이승 저승 오가며 통하도다.

 

兒郞偉抛樑西 上芳山下淸溪 溪上誰有召我 春來花發鳥啼

(아랑위포량서 상방산하청계 계상수유소아 춘래화발조제)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라 정자 위 꽃다운 산 정자 아래 맑은 시내네.

냇가 위 누가 있어 나불러 오게 했나. 봄이 와 꽃이 피고 새가 우네.

 

兒郞偉抛樑南 問道松此心涵 是亭也淸且豁 讀書室兼墳庵

(아랑위포량남 문도송차심함 시정야청차활 독서실겸분암)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라 소나무 길을 물어 여기에 마음 담네.

이 정자만 깨끗하고 한층 더 뚫려 있어 책 읽는 방도 있고 묘 지키는 재실 있네.

 

兒郞偉抛樑北 勝狀巴陵水色 彼無源奚以哉 請看晝夜不息

(아랑위포량북 승상파능수색 피무원해이재 청간주야불식)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저 북쪽에 파릉 지역 물빛은 아름다운 풍경이라.

저 근원이 없는 물 어디서 이뤄질까 청컨대 밤낮으로 쉬지 않음 보리라.

 

兒郞偉抛樑上 前輩餘韻可仰 風景不殊古今 何處彷彿遺像

(아랑위포량상 전배여운가앙 풍경불수고금 하처방불유상)

어기여차 떡 던져라 들보 저 위쪽에 선배들의 남은 운치 우러를 만하네.

풍경은 예와 이제 다르지 않으니 어느 곳의 남긴 형상 비슷할까.

 

兒郞偉抛樑下 靑編黃卷暎架 這不換滿籯金 吁此世知者寡

(아랑위포량하 청편황권영가 저불환만영금 우차세지자과)

어영차 들보를 아래쪽에 던져라 푸른 책과 누런 서적 시렁에 비치네.

이것은 상자 가득 금과도 안 바꾸니 이 세상에 아는 이가 적음을 탄식하네.

 

伏願上樑之後絃誦不絶 禮讓克敦矜式斯存 明綱常扶植之道 學業相勸講人已修治之方 如復鄒魯之鄕 可矯叔季之俗 所望者此奚求乎他

(복원상량지후현송불절 예양극돈긍식사존 명강상부식지도 학업상권강인이수치지방 여부추로지향 가교숙계지속 소망자차해구호타)

엎드려 바라오니 들보를 올린 후에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예의와 겸양이 돈독하고 법도를 보전하며, 강상(綱常)을 부지하는 도를 밝히고 학업을 서로 권장하여 남과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을 강론하여 추로(鄒魯)의 고을로 회복하고 말세의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바라는 바가 이것이니 다른 무엇을 구하겠는가.

 

歲旃蒙大淵獻剝之下澣

(세전몽대연헌박지하한)

을해년(1935) 구월 하순

德殷 宋曾憲撰(덕은 송증헌 지음)

(주석)

송증헌(宋曾憲) : 1878~1947, 後菴, 송시열 후손, 문집 후암집.

甄君之思亭(진군지사정) : 진사도(陳師道)思亭記(사정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甄君에게 어버이가 생각나는 정자 이름을 짓도록 하여 자손들의 효심을 일으키게 했다는 내용.

豺獺(시달) : 승냥이와 수달, 하찮은 짐승.

兒郞偉(아랑위) : 들보를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들 때 나는 어기여차”, “어영차라는 의성어로 보는 견해와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싸잡아 부를 때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 후렴부에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의 묘사와 조상의 은택이 길이 전해지길 기원.

抛樑 : '들보 던지기'는 동서남북상하 여섯 구(句)로 作詩

巴陵(파릉) : 악양의 옛 지명으로 동정호 물이 양자강으로 흘러가는 출구에 위치, 거연정 주변 경치를 비유한 것으로 사료되며 주련과 차운시에도 나옴.

綱常(강상) ; 三綱五常, 사람이 지켜야 할 道理.

鄒魯(추로) : 공자는 나라 사람이고,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라는 뜻, 공맹(孔孟)을 가리킴.

旃蒙(전몽) : 天干. 大淵獻(대연헌) : 地支, 따라서 乙亥年.

剝之(박지) : 음력 9. 下澣(하한) : 下旬.

해문(解文) 작성 : 백촌 김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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