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현판, 편액, 주련

거연정 편액 차운 이야기

돌샘 2021. 5. 21. 21:49

거연정(居然亭) 편액 차운(次韻) 이야기

(2021.5)

거연정 건물 안쪽에 걸려있는 편액(扁額)은 모두 8개이고, 그중에 차운시(次韻詩)가 적혀 있는 편액은 3개다. 편액마다 2편씩 총 6편의 시가 적혀 있다. 차운시는 원운(原韻)의 운자(韻字)를 따서 지은 한시로 화운(和韻)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운은 거연정(居然亭) 원운(原韻) 이야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거연정을 건축하신 증조부님(諱 卞相瑢)께서 읊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측기식 칠언 율시로서 운자는 <, , , , >이다. 시는 검정색 바탕의 판목에 흰색 글씨로 쓰여 있으며 편액 테두리가 장식되어 있다. 차운 편액은 거연정 오른쪽(건물 기준) 누마루 측면(朴憲脩, 金駿永), 정자 오른쪽 방문 위(權載奎, 南昌熙)와 왼쪽 방문 위(李忠鎬, 李大源)에 걸려있다.

 

차운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한문을 읽는데도 어려움이 있던 터라, 한시 해석은 언감생심이었다. 뜻이 있는 후손이나 한문 식자(識者)에 의해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5년 가을에 편액사진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2020년 봄 우연한 기회에 백촌 김창현님과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닿았다. 백촌은 한문은 물론 한시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오랜 산고 끝에 백촌이 번역한 차운 6편의 해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원문과 해문은 물론 자세한 해석 자료까지 받아드니 감개무량하고 감사한 마음 그지없다. 한시의 귀중한 자료라 관심을 가진 분들과 공유하기 위해 원문과 해문을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려놓는다. 한시에는 다양한 비유와 성어, 고사 등이 포함돼 있으므로, 동일한 뜻이라도 번역자에 따라 표현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음미하시기 바란다.

* 거연정 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양촌리 개양부락

(해문 작성 : 백촌 김창현)

 

 

次居然亭原韻1(차거연정원운1)

 

知君家世舊氈(지군가세구전청) 그대 집안 내려온 옛 가업 아는데

幾葉南州起此(기엽남주기차정) 몇 대 내려 남쪽 땅에 이 정자 세웠도다.

十載經營斯翬革(십재경영사휘혁) 십년을 계획하여 번듯하게 이루었고

當時遊釣某邱(당시유조모구정) 그 당시 어느 언덕 물가에서 낚시 했네,

群龍滿室眞荀傑(군룡만실진순걸) 많은 학자 방안 가득 순자 같은 인걸이고

旅雁來賓盡楚(여안래빈진초성) 나그네 손님 모두 굴원처럼 깬 분이네,

異日尋芳如屨及(이일심방여구급) 다른 날 명소 찾아 발길 닿게 해 보리니

更將勝槪賀居(경장승개하거정) 다시금 좋은 경치 머물러서 축하하리.

立庵 朴憲脩(입암 박헌수)

<주석>

박헌수(朴憲脩) : 1872~1959, 立庵, 본관 密陽, 거주지 山淸 丹城, 立庵文集(次 居然亭韻 卞仁燮與南克辰來請).

靑氈(청전) : 靑氈舊物의 준말, 선대의 귀한 유물, 가업. 翬革(휘혁) : 화려하고 웅장하며 날아갈 듯 번듯함.

群龍(군룡) : 어진 신하나 선비들을 비유. 眞荀傑(진순걸) : 순자(荀子)의 사상을 따르는 인걸.

楚醒(초성) : 세상에 영합하지 않고 지조를 지킨다는 말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 인용.

측기식 칠언율시 형태로 九靑平聲운인 <靑亭汀醒停>운을 바탕으로 쓴 차운시(次韻詩) : 이하동일

 

次居然亭原韻2(차거연정원운2)

 

嘉祥十世一氊(가상십세일전청) 상서로운 세월 걸친 가보 하나 푸른데

早卜金岡晩起(조복금강만기정) 금빛 언덕 일찍 터 잡아 늦게 정자 세웠네,

洞闢藤蘿雲萬堞(동벽등라운만첩) 깊은 골짜기 등나무 덩굴에 구름은 성첩 같고

軒通溪澗月千(헌통계간월천정) 난간 통한 시냇가엔 많은 달이 비추네,

詩書滿架經秦劫(시서만가경진겁) 시렁 가득 시와 글씨 진 나라 화 겪었고

蘭菊成叢想楚(성총상초성) 떨기 이룬 난초 국화 굴원(屈原)대부 연상되네,

如或亭人勤肯構(여혹정인근긍구) 행여 후손들이 부지런히 업을 잇는다면

夢魂來去暫無(몽혼래거잠무정) 꿈속 혼이 오고가며 오랫동안 머무르리.

小庭 金駿永(소정 김준영)

<주석>

김준영(金駿永) : 1890~1953, 小庭, 본관 瑞興

經秦劫(경진겁) : 나라 화 겪었고,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말함.

想楚醒(상초성) : 초나라 대부 굴원(屈原)을 연상. 肯構(긍구) : 肯構肯堂의 준말로 조상의 유업을 계승.

 

 

次居然亭原韻3(차거연정원운3)

 

特地金岡入眼(특지금강입안청) 금빛 언덕 특별한 땅 눈에 들어 푸르니

箇中端合置名(개중단합치명정) 그 가운데 이름 난 정자 세움 마땅하네,

吟餘爽氣秋生壑(음여상기추생학) 골짜기서 가을 일자 상쾌한 기운 읊고

坐久閒情鷺下(좌구한정로하정) 백로 내린 물가에 오래 앉아 한가롭네,

肯構元來知孝思(긍구원래지효사) 가업 계승 원래는 효심임을 알았고

儲書要是爲心(저서요시위심성) 책 쌓음은 요컨대 정신을 깨움이라,

若敎世世能繩述(약교세세능승술) 만약에 대대로 이어 받을 수 있다면

卞氏休風永不(변씨휴풍영부정) 변씨 가문 좋은 풍속 오래도록 안 멈추리.

而堂 權載奎(이당 권재규)

<주석>

권재규(權載奎) : 1870~1952, 而堂, 본관 安東, 거주지 山淸 丹城, 而堂先生文集.

入眼靑(입안청) : 눈에 들어 푸르다. 푸른 눈빛으로 바라본 반가움의 서정. 世世 : 대대로.

 

次居然亭原韻4(차거연정원운4)

 

金岡山水孝心(금강산수효심청) 효심 깊은 금빛 언덕 산과 물 푸른 땅에

構得尊公未就(구득존공미취정) 부친께서 완성 못한 정자를 지었구나,

林壑增光雲裡壁(임학증광운리벽) 빛 더한 숲 골짜기 구름 속의 담이고

鳥魚呈態鏡中(조어정태경중정) 새와 물고기 즐겨 노는 거울 속 물가이네,

旣成一日堂輪奐(기성일일당륜환) 하루 만에 지어진 정자는 장대 했고

又護當年石醉(우호당년석취성) 정자 보호하는 그 해에 돌 취하고 깨었다네.

想是九原先處士(상시구원선처사) 아마 이것은 구천에 계신 선친이라

朝朝來格此中(상시구원선처사) 아침마다 오셔서 이 가운데 머무시네.

夷川 南昌熙(이천 남창희)

<주석>

남창희(南昌熙) : 1870~1945, 夷川, 본관 宜寧, 夷川集

尊公(존공) : 尊甫, 尊長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一日 : 여기서 하루는 짧은 기간을 의미

堂輪奐 : 정자의 장대함을 말함. 九原 : 九泉, 黄泉,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산다는 세상.

 

 

次居然亭原韻5(차거연정원운5)

 

芸楣花墨換丹(운미화묵환단청) 예쁜 처마 꽃 글씨에 단청도 바꾸어서

泉石居然起此(천석거연기차정) 자연(泉石) 속에 편히 살려 이 정자를 세웠네,

坐愛琴書憑古案(좌애금서빙고안) 방석 기대 거문고와 책은 앉아서 즐기고

步隨?鷺向空(보수구로향공정) 걸음 따라 물새들은 빈 물가로 향하네,

先祠密邇追誠感(선사밀이추성감) 선조 사당 가까워 정성 쫓아 감응했고

勝地淸閒喚夢(승지청한환몽성) 뛰어난 곳 맑은 여유 꿈을 불러 깨우네,

爲賀賢孫思肯構(위하현손사긍구) 어진 자손 위하여 정자 세움 생각하니

東南車轍幾多(동남차철기다정) 동남쪽 수레들이 얼마나 많이 머무를까.

眞城 李忠鎬

<주석>

이충호(李忠鎬) : 1872~1951, 霞汀, 본관 眞城, 禮安 출신, 퇴계(退溪) 이황(李滉)13대종손(宗孫),

문집 주서절요(朱書節要), 고계문집(古溪文集), 계몽전의(啓蒙傳疑), 도산문현록(陶山門賢錄), 교남빈흥록(嶠南賓興錄).

芸楣 : 운미 또는 예미로 읽을 수 있는데, 운미로 읽어 해석. ?鷺(구로) : 갈매기와 해오라기, 물새들.

車轍 : 수레바퀴 자국.

 

次居然亭原韻6(차거연정원운6)

 

百年長物舊氊(백년장물구전청) 백 년 세월 남은 물건 옛날의 유물인데

有赫其家肯構(유혁기가긍구정) 빛나는 그 집에서 정자를 지었구나,

仲統園林環一壑(중통원림환일학) 중장통의 숲 동산 한 골짝에 둘러있고

平泉花石滿前(평천화석만전정) 평천장 꽃과 바위들이 앞 물가에 가득 찼네.

福田圓餉應多報(복전원향응다보) 공양 보시 베풀어 마땅히 많이 갚고

塵世深藏是獨(진세심장시독성) 속된 세상 깊이 감춘 이곳에서 홀로 깨네,

春日巴陵方渙水(춘일파릉방환수) 봄날 파능에서 바야흐로 물길이 흩어져도

洄遊魂夢不須(회유혼몽불수정) 물길 타고 꿈속에서 머무르지 않는다네.

驪州 李大源

<주석>

이대원(李大源) : 본관 驪州

仲統園林 : 仲長統의 원림, 후한 때 사람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문사에 능함.

平泉花石 : 화려한 별장, ()나라 정승 이덕유(李德裕)가 세운 평천장(平泉莊)이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유명.

巴陵 : 악양의 옛 지명으로 동정호 물이 양자강으로 흘러가는 출구에 위치, 거연정 주변 경치를 비유한 것으로 사료되며 주련과 상량문에도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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