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샘 이야기/여행과 답사(2015)

태릉 배 밭과 숯불갈비

돌샘 2015. 4. 27. 21:17

태릉 배 밭과 숯불갈비

(2015.4.26)

화창한 봄날 일요일 오후.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소일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4월 하순이니 태릉으로 드라이브 가서 하얀 배꽃도 구경하고

저녁엔 숯불갈비를 먹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집사람도 쉽게 동의했다.

태릉과 인연을 맺은 지는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관악캠프스로 이전하였지만 나의 학창시절에 공대는 공릉동 지금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자리에 있었다.

입학하던 해 어느 봄날 선배들이 베풀어주는 신입생 환영회가 학교 부근인 태릉 솔밭에서 열렸다.

이름이 환영회지 실상은 막걸리를 반강제적으로 먹이는 행사였다.

봄, 가을이면 여대생들과 단체미팅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봄에는 꽃구경을 겸하고 가을에는 먹골 배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 후에는 장모님께서 집에 오시면 태릉이나 부근 선수촌과 사격장에 조성된 공원으로 야외나들이를 오곤 하였다.

그 후에도 몇 년에 한번쯤은 드라이브 겸 배꽃구경이나 숯불갈비를 먹으러왔었다.

가장 최근 이곳을 찾은 지는 5년쯤 된 모양이다.

 

성수대교를 건너고 동부간선도로를 거쳐 태릉을 지났으나

배 밭은 보이지 않고 삐죽 솟은 별내지구 아파트만 시야를 가린다.

간신히 찾은 조그만 배 밭으로 걸어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달려있는 꽃송이가 많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배꽃이 상당히 떨어지고 일부만 남아있는 모양이다.

아파트촌 건너편 불암산 자락에는 숯불갈비집이 즐비하였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한두 번 왔던 집을 찾아들어갔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야 없었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돼지갈비와 소주 한 병을 앞에 놓았다.

부부간의 대화 내용이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과거 회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도 어지간히 나이가 든 모양이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월.

이제야 겨우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보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일행 중 유독 준모 또래의 아이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다음 주에는 손자와 손녀를 만나볼 수 있으려나?

소주 한잔이 때론 괴력을 발휘하나 보다.

나의 소중한 손자 손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길을 지날 때쯤에는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할애비 입에서 가곡 ‘그집앞’이란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내가 탄 차는 먼 과거를 둘러보고 현재를 지나 어느새 희망찬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