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이야기/2017년 이야기

게임에 이기고 싶어요

돌샘 2017. 11. 17. 21:06

게임에 이기고 싶어요

(2017.11.12.)

손주들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약속되어 할머니가 김밥과 닭백숙을 준비했습니다.

준모와 지우가 개선장군처럼 도착하자 집안이 활기를 띠었습니다.

준모는 선물용 ‘빼빼로’를 여러 개 가져와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빼빼로 데이’였나 봅니다.

음식상을 거실에 펴고 모두 둘러앉으니 집안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딸아이내외도 볼일로 상경했다가 식사를 하고 울산으로 돌아갈 예정이지요.

식사가 시작되자 모두들 조용히 먹고 있는데 지우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과자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도 과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밥은 먹고 나서 과자를 먹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 집 손주들은 군것질보다 밥을 더 좋아해 큰 복이라 여겼는데...

감기로 인해 밥맛이 없는 까닭인가 봅니다.

준모는 어느새 고모부와 ‘포켓 몬 카드’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지난번에 준모가 카드놀이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할애비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왔습니다.

고모도 합류하여 네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였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단 패가 잘 들어야 하니까 승리는 번갈아가며 하였습니다.

할머니와 엄마는 부엌 쪽에 있고 아빠 외에 모든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자 지우가 외톨이처럼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우가 탁자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습니다.

주위사람들의 관심을 자기한테로 유도하려는 의지가 담긴 것 같았습니다.

할애비가 카드놀이에서 빠져나와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자 좋아했습니다.

 

준모가 야구경기 게임기를 가져왔습니다. 준모네 집에 이사직후 갔을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입니다.

게임을 하기위해 야구경기 방법을 묻자, 준모가 설명을 해주었지만 별 흥미가 없는 듯했습니다.

과일을 먹으며 다시 카드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준모는 손이 작아 패를 제대로 잡고 펼칠 수가 없으니 겹쳐 잡거나 바닥에 펴놓았습니다.

숫자 순서대로 카드를 내는데 준모가 한번 내었던 카드를 바꾸어내자 고모부가 ‘낙장불입’이라고 했습니다.

준모가 ‘낙장불입이 뭔데?’하고 물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용어이겠지요.

‘낙장불입은 게임을 할 때 한 번 내었던 카드를 회수하고

다른 카드를 내는 것을 말해.’하였지만 귀담아 듣지는 않았습니다.

지우가 2층으로 올라갔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가보았더니 아빠와 함께 컴퓨터 방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지우야! 할아버지께 춤추는 것 보여드려라.’했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상어가족’과는 다른 춤을 선보였습니다.

말하는 내용도 또렷해지고 자신의 의사표현도 한결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거실에 내려오니 준모는 여전히 고모부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울산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 게임은 몇 판만 더하고 그만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동안 게임 승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준모가 직전 게임과 마지막 게임을 모두 졌습니다.

준모가 마지막 게임에서 진 것을 크게 아쉬워하더니 끝내 울면서 방에 들어 가버렸습니다.

준모가 평소 승부욕이 강하긴 했지만 게임에 졌다고 소리를 내어 울기까지 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뜻밖의 일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예전에 윷놀이, 바둑 알까기, 농구 게임 등을 하다가

지면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워 한 적은 있어도 우는 일은 전혀 없었지요.

저 나이에 승부욕이 없으면 그것도 이상하겠지만 울기까지 하는 것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로 울었으면 할애비가 들어가 달래주었을 텐데

사소한(?) 게임까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른 체 하였습니다.

딸아이내외는 도착시간을 고려해 환송을 받으며 울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준모와 지우는 주차장에서 환송하고 올라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준모가 우는 것을 보고 난 후라 할애비도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어제 하늘정원 월동준비를 서둘러 하느라 체력에 무리가 갔는지 온몸이 쑤셔왔습니다.

안마기에 앉아 안마를 시작하자 지우가 다가와 자기가 안마를 하겠다며 비껴달라고 하였습니다.

지우는 예전부터 안마기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자리를 비켜주고 준모 옆 소파에 앉았습니다.

 

준모가 슬며시 할애비에게 카드놀이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에 졌다고 울었던 흉을 보며 거절하고, 두 번째 청을 받고서야 게임에 응했습니다.

전체 카드 속에 ‘트럼프’의 ‘조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아이템’을 총8장 넣고 섞었습니다.

첫 번째 판의 내 카드 패에는 ‘아이템’이 5장 들어왔습니다.

준모도 ‘아이템’이 모두 8장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 자기 패를 보고 내 패가 좋은 것을 짐작할 수 있었겠지요.

내가 일방적으로 승리를 했는데 준모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범이 내가 피곤한 것을 고려해 준모에게 카드놀이를 1판만 더하고 그만하도록 이야기했습니다.

준모는 게임을 더 하고 싶은데 그만하도록 하자

‘시간이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만하도록 해요?’하며 이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피곤하시니 쉬게 해드리고 우리는 서점에 가자.’고 달래었습니다.

이야기 내용을 들으니 준모가 평소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 하는 모양입니다.

오늘 마지막 판의 카드 패를 나누어 잡았는데 ‘아이템’카드가 4장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준모도 4장 들었을 테니 패는 막상막하인 셈입니다.

순조롭게 게임이 진행되어 모두 손에 4장씩의 카드를 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준모 차례인데 ‘패스’를 하려고 하는듯하다가 잠시 망설였습니다.

내 차례가 되면 게임이 바로 끝나고 승리하는 패를 잡고 있었습니다.

준모가 ‘아니다!’하더니 ‘아이템! 아이템! 아이템! 그리고 70!’하고는 ‘끝~’하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변경하여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준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지만 금방 카드놀이를 더 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았습니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은 상태에서 조손이 다음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거실에 누워 가만히 천정을 바라보았습니다.

게임에 졌다고 흐느껴(?) 울던 준모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어른들 틈에 끼여 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던 늠름한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교육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떠나 달래줄 걸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긴 가을밤 내내 준모의 모습과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준모 할머니는 준모가 울었던 이유가 카드놀이에서 진 것도 한 가지 원인이겠지만

평소 자기와 잘 놀아주던 고모와 고모부가 멀리 간다는 사실이 더욱 슬프게 한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